아이섀도·립글로스는 왜 변색될까? 색소 변색의 모든 것

화장품을 만들다 보면 꼭 부딪히는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 처음엔 예쁜 색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바래거나 누렇게 뜨는 현상이죠. 특히 색소가 많이 들어가는 아이섀도나 립글로스는 이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오늘은 화장품 색소가 왜 변색되는지,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제품을 시장에 낼 때 어느 정도까지 허용해야 하는지를 최대한 쉽게 풀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색이 변한다는 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색소는 우리 눈에 특정 색으로 보이게 만드는 ‘색을 내는 알갱이’입니다. 그런데 이 색소는 생각보다 예민합니다. 빛, 열, 산소, 습기 같은 외부 자극을 받으면 분자 구조가 조금씩 망가지고, 구조가 망가지면 우리 눈에 보이는 색도 달라집니다.

쉽게 비유하면, 오래 걸어둔 커튼이 햇빛에 바래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색을 내던 분자가 빛에 얻어맞아 부서지면, 그 색을 더 이상 못 내게 되는 거죠.

변색의 주요 원인은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빛에 의한 변색(광산화). 가장 흔하고 가장 큰 원인입니다. 뒤에서 따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둘째, 열에 의한 변색. 여름철 차 안이나 창가처럼 뜨거운 곳에 두면 색소가 분해됩니다.

셋째, 산소에 의한 변색. 제품 속 기름 성분이 공기 중 산소와 만나 산패(기름이 상하는 것)되면서 색소까지 같이 망가집니다.

넷째, 습기. 욕실처럼 습한 곳에 두면 색소가 물기를 먹고 변질됩니다.

다섯째, 산도(pH) 변화. 특히 천연 색소는 제품의 산성/알칼리성이 조금만 바뀌어도 색이 확 변합니다.


2. 가장 큰 범인, ‘빛에 의한 변색’ (광산화)

변색 원인의 대부분은 빛입니다. 전문 용어로는 ‘광산화(光酸化)’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빛(光) 때문에 산소와 반응(산화)해서 망가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망가지는가

과정을 아주 단순하게 그리면 이렇습니다.

여기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게 자외선(UV)입니다. 자외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에너지가 강한 빛이라 색소 분자를 부수는 힘이 셉니다.

자외선은 다시 두 종류로 나뉩니다.

  • UVA: 에너지는 약하지만 깊숙이, 오래 파고듭니다. 누적 피해가 큽니다.
  • UVB: 에너지가 강해서 직접적으로 색소를 부숩니다.

실제 환경에서는 이 둘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창가나 매장 조명 아래 오래 둔 제품이 특히 잘 변색됩니다.

왜 산소가 문제인가

빛만으로도 색소는 부서지지만, 여기에 산소가 끼어들면 피해가 훨씬 커집니다. 빛을 받은 색소가 산소를 ‘활성산소’라는 아주 공격적인 상태로 바꾸는데, 이 활성산소가 색소뿐 아니라 제품 속 기름 성분까지 연쇄적으로 망가뜨립니다. 하나가 상하기 시작하면 옆으로 계속 번지는 도미노 같은 현상이죠.

미량의 금속도 문제

원료나 물에 아주 조금 섞여 있는 철, 구리 같은 금속 성분은 변색의 ‘촉매’ 역할을 합니다.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것들을 더 빨리 망가지게 부추기는 거죠. 그래서 이 금속을 붙잡아 두는 성분(뒤에 나올 ‘킬레이트제’)이 중요합니다.

3. 색소마다 튼튼함이 다르다

모든 색소가 똑같이 잘 변하는 건 아닙니다.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장 약한 것 — 천연 색소. 당근에서 뽑은 주황색, 블루베리에서 뽑은 보라색 같은 천연 색소는 예쁘고 이미지도 좋지만, 빛에 아주 약합니다. 천연이라 ‘착하다’는 이미지와 달리, 안정성 면에서는 가장 다루기 어렵습니다.

중간 — 합성 유기 색소. 우리가 흔히 ‘FD&C 색소’, ‘D&C 색소’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립스틱이나 아이섀도의 선명한 빨강, 파랑, 노랑을 낼 때 씁니다. 천연보다는 안정적이지만, 여전히 빛에 어느 정도 약합니다. 특히 파란색 계열이 잘 변합니다.

가장 튼튼한 것 — 무기 색소. 산화철(쇠가 녹슨 것과 비슷한 성분으로 만든 빨강·노랑·검정), 운모(미네랄 펄), 이산화티타늄(흰색) 같은 광물 계열입니다. 돌가루에 가까운 성분이라 빛을 받아도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대신 천연·합성 색소만큼 화려하고 다양한 색을 내기는 어렵습니다.

정리하면, 화려한 색일수록 잘 변하고, 안정적인 색일수록 무기 색소라 색 표현에 한계가 있다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4. 변색을 막는 방법

그럼 어떻게 막을까요? 크게 네 갈래의 무기가 있습니다.

① 자외선을 막아주는 성분 (자외선 흡수제·산란제)

선크림에 들어가는 성분과 같은 원리입니다. 자외선이 색소에 닿기 전에 대신 흡수하거나 튕겨내는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아보벤존, 옥토크릴렌 같은 흡수제와, 이산화티타늄·산화아연 같은 산란제가 있습니다.

② 산화를 막아주는 성분 (항산화제)

활성산소가 색소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대신 반응해 주는 ‘방패’ 성분입니다. 비타민E(토코페롤)가 대표적이고, BHT·BHA 같은 성분도 씁니다. 방패가 대신 맞아주는 동안 색소는 보호받습니다. 다만 방패도 소모되므로 적절한 양이 중요합니다.

③ 금속을 붙잡는 성분 (킬레이트제)

앞서 말한 ‘변색을 부추기는 미량 금속’을 붙잡아 얌전하게 만드는 성분입니다. EDTA, 구연산(시트릭애씨드) 등이 여기 해당합니다. 양은 아주 적게 들어가지만 효과는 큽니다.

④ 기름 대신 실리콘 쓰기 (기제 변경)

이게 의외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제품의 뼈대가 되는 기름 성분을 잘 안 상하는 실리콘 계열로 바꾸면, 산화 자체가 크게 줄어듭니다. 식물성 기름이 가장 잘 상하고, 광물성 기름이 중간, 실리콘이 가장 안정적입니다.

⑤ 그리고 가장 확실한 것 — 용기(포장)

사실 위의 모든 성분을 다 넣는 것보다, 빛이 안 통하는 검은색·불투명 용기에 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때가 많습니다. 투명한 용기는 빛을 90% 이상 통과시키지만, 검은 용기는 거의 차단합니다. 아무리 좋은 성분을 넣어도 투명 용기에 담으면 효과가 반감됩니다.

5. 변색을 미리 확인하는 방법 — 제논 테스트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이거 나중에 변색되지 않을까?”를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실제로 1년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 짧은 시간에 오랜 시간의 빛 노출을 흉내 내는 장비를 씁니다. 이걸 ‘가속 시험’이라고 합니다.

제논 램프란?

가장 많이 쓰는 장비가 제논 램프(Xenon Lamp)입니다. 제논이라는 가스에 전기를 흘려 만드는 강한 빛인데, 햇빛과 가장 비슷한 빛을 냅니다. 이 빛을 제품에 강하게 쬐어서, 며칠 만에 몇 달~몇 년치 햇빛 노출을 압축해서 겪게 하는 거죠.

‘데이라이트(D65)’와는 다른 건가요?

많이 헷갈리는 부분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른 것입니다.

  • 제논 램프는 실제로 빛을 쏘는 ‘진짜 광원’입니다. 제품을 실제로 비춰서 변색을 일으키는 장비죠.
  • 데이라이트(D65)는 실제 램프가 아니라 ‘색을 평가할 때 쓰는 기준’입니다. 정오의 햇빛을 수학적으로 정의해 놓은 표준이에요.

색을 측정하는 기계에서 “D65 기준으로 측정”이라고 설정하는 건, 램프를 켜는 게 아니라 “정오의 햇빛 아래에서 봤을 때의 색으로 계산해줘”라는 뜻입니다. 즉 제논은 ‘변색을 일으키는 도구’, D65는 ‘변색된 정도를 재는 기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얼마나 변하면 문제인가 — ΔE(델타 이)

변색 정도는 ΔE(델타 이)라는 숫자로 잽니다. 색을 측정하는 기계(분광광도계)로 시험 전과 후의 색을 재서,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하나의 숫자로 나타낸 것입니다. 숫자가 클수록 많이 변한 겁니다.

사람 눈 기준으로 대략 이렇게 보면 됩니다.

  • ΔE 1 이하: 나란히 놓고 봐도 거의 구분 못 함
  • ΔE 2~3: 나란히 비교하면 알아챔, 따로 보면 대부분 모름
  • ΔE 3~5: 예전 색을 기억하고 비교하면 “어? 좀 변했네” 싶은 수준
  • ΔE 5 이상: 누가 봐도 명백히 변색, 클레임 위험

6. 여기서 중요한 오해 하나 — 합격 기준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인터넷이나 일부 자료를 보면 “제논 168시간(1주일) 테스트에서 ΔE 2 이하여야 합격”이라는 식의 기준이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이 기준을 색조 화장품에 그대로 들이대면 거의 다 불합격이 나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엄격한 기준은 원래 화장품 기준이 아닙니다. 자동차 도료나 섬유, 페인트처럼 몇 년씩 바깥 햇빛에 노출되는 산업재의 내구성 시험에서 온 기준입니다. 제논 168시간 풀 노출은 ‘창가에 몇 주간 방치’한 것과 비슷한 가혹한 조건인데, 실제 아이섀도는 파우치나 서랍, 콤팩트 안에 들어 있죠. 조건 자체가 현실과 안 맞습니다.

그래서 이 기준은 ‘제품을 떨어뜨리는 합격선’이 아니라, ‘여러 시제품 중 어느 게 빛에 더 약한지 순위를 매기는 용도’로 쓰는 게 맞습니다.

7. 그럼 실제 시장 출시 기준은?

식약처의 화장품 안정성 시험 가이드라인을 보면, 광안정성 시험의 원칙이 나옵니다. 핵심은 “그 제품이 실제로 노출될 만한 수준의 빛”을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노출이 아니라 현실적인 노출을 기준으로 삼으라는 뜻이죠. 판정도 “색·외관·점도 등에 의미 있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절대적인 숫자 컷오프가 아니라 정성적인 원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실무에서 제안하는 현실적인 기준은 이렇습니다.

주된 판정은 ‘열·시간 안정성 시험’으로. 실온에서 유통기한 동안 두는 장기 시험과, 40도·습도 75%에서 3개월 두는 가속 시험이 화장품 안정성의 핵심입니다. 색 변화도 이 시험의 관찰 항목으로 함께 봅니다.

제논(빛) 테스트는 보조 도구로. 절대 합격선이 아니라, 시제품끼리 비교하고 약한 색소를 걸러내는 용도로 씁니다.

용기를 판정에 포함. 차광 용기라면 빛에 대한 요구를 그만큼 완화할 수 있습니다.

색차(ΔE) 기준은 제품군에 따라 이렇게 잡는 것을 권합니다.

제품 유형색차 허용 기준조건

라이트·누드 톤ΔE 3 이하무기 색소 위주
미디엄 톤ΔE 3~4 이하포장 보호 전제
딥·진한 색상ΔE 5 이하차광 용기 필수 명시

즉, 무의미하게 낮은 ΔE를 모든 색상에 강요하지 말고, 사람 눈이 실제로 알아채는 수준(ΔE 3 안팎)을 기준선으로 잡되, 진한 색은 용기로 보완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8. 대기업·대형 OEM은 어떤 기준을 쓸까?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한국콜마, 코스맥스 같은 회사들의 구체적인 사내 색차 합격 기준(ΔE 몇 이하)은 대외비라서 공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이 회사는 ΔE 2.5″라고 딱 떨어지게 적어놓은 게 있다면, 십중팔구 근거 없는 추정입니다.

다만 이들이 공통으로 따르는 상위 틀은 공개돼 있습니다. 바로 식약처 안정성 시험 가이드라인이고, 앞서 말한 것처럼 ‘현실적 노출 강도’와 ‘의미 있는 변화 없음’이라는 원칙 위에서, 각 회사가 자기만의 ΔE 관리 수치를 내부적으로 정해 운영합니다. 그 내부 수치가 바로 공개되지 않는 영업 비밀인 셈이죠.

정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면

실제로 근거 있는 기준이 필요하시면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KTR(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같은 공인 시험기관에 직접 시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험성적서에 어떤 조건으로 시험했고 어떤 판정 기준을 적용했는지가 명시되어 나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둘째, 색소를 공급하는 원료사의 광안정성 기술자료를 받는 것입니다. 다만 이건 원료 단위 데이터라, 완제품 기준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마치며

색소 변색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관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변색의 가장 큰 원인은 빛(광산화)이고, 여기에 열·산소·습기가 더해진다.
  • 막는 방법은 자외선 차단 성분 + 항산화제 + 금속 차단제 + 실리콘 기제 + 차광 용기의 조합이다.
  • 미리 확인할 때는 제논 테스트를 쓰되, 이건 합격/불합격을 가르는 절대 기준이 아니라 비교·선별 도구로 쓴다.
  • 진짜 출시 판정은 열·시간 안정성 시험이 중심이고, 색차는 사람 눈 기준(ΔE 3 안팎)으로 잡되 용기로 보완한다.
  • 대기업의 정확한 사내 기준은 대외비이니, 필요하면 공인 시험기관 의뢰로 확인하는 게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

무작정 “무조건 안 변해야 한다”가 아니라, 현실적인 기준을 세우고 그에 맞게 포뮬레이션과 용기를 설계하는 것. 그게 변색 문제를 다루는 가장 실용적인 접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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