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핵심: 메이크업 생산기술 — 이 글을 시작하며.. —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플랜트 설계와 열역학, 공업화학, 유기화학, 무기화학을 배웠지만, 정작 전공을 그대로 살려 자리를 잡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1990년대 후반은 나라 전체가 성장의 열기로 달아오르던 시기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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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플랜트 설계와 열역학, 공업화학, 유기화학, 무기화학을 배웠지만, 정작 전공을 그대로 살려 자리를 잡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1990년대 후반은 나라 전체가 성장의 열기로 달아오르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정유회사나 조선소 같은 대기업의 문이 넓게 열려 있었고, 나 역시 그 문을 통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큰 조직 안에서 나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매일이 쳇바퀴처럼 돌아갔고, 거대한 기계의 부속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같은 욕심이 있었다. 한 번뿐인 인생, 나도 언젠가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것. 하지만 자본집약적인 대기업의 플랜트 산업 안에서 그런 꿈을 품기는 어려웠다.
회사를 다니던 중,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에 원서를 넣었다. 화학을 전공한 나와 제법 잘 어울리는 회사처럼 보였다. 그렇게 1999년, 아모레퍼시픽 김천공장에 입사했다. 화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처음 맡은 일은 ‘빨래박사’라는 세제를 만드는 공장 업무였다. 그리고 1년 남짓 지났을 무렵, 메이크업 사업장으로 이동 발령을 받는다. 지금 돌아보면, 그 발령 한 장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꾼 셈이다.
메이크업 사업장에서 처음 맡은 곳은 신제형파트였다. 그곳에서 나는 화장품 기술의 전반을 처음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메이크업 생산기술은 걸음마 수준이었다. 마케터들과 함께 해외 ODM 업체를 찾아다니며 선진 기술을 눈으로 익혔다. 이탈리아의 인터코스와 감마크로마, 일본의 도키와와 일본콜마 같은 ODM회사들이 그 배움의 현장이었다. 이탈리아의 이름난 기술자였던 리가노 컨설팅, 그리고 일본의 여러 기술 전문가들에게 직접 배울 기회도 점점 늘어났다.
그중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한마디가 있다.
“왜 한국은 팩트를 벽돌처럼 만드느냐?”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제조 기술력은 글로벌 수준에 한참 못 미쳤다. 대부분은 일본의 표준과 기술을 그대로 들여와 현장에 적용하던 시절이었다. 화장품의 품질 기준마저 일본의 것을 번역해 그대로 쓰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팩트의 낙하 기준이었다. 일본 기준은 90cm 높이에서 떨어뜨려도 팩트가 깨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용감보다 품질을 앞세우는 일본식 문화 속에서, 우리는 결합제를 많이 넣은 처방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팩트는 단단해졌지만 발림성은 떨어졌다. 같은 시기 시세이도, 로레알, 입생로랑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은 커버력은 물론이고 밀착력과 지속력까지 갖추면서도 부드럽게 발리는 팩트를 내놓고 있었다. 반면 한국은 품질 기준을 맞추기 위해 내용물을 딱딱하게 성형해야 했다.
물론 그럴 만한 사정도 있었다. 당시 한국은 비포장 도로가 많아, 제품이 운송 중에 파손될 우려가 컸다. 작은 클레임 하나가 두려워 어쩔 수 없이 품질을 계속 강화했고, 그럴수록 소비자들에게는 “한국 화장품은 아직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그 무렵 알게 된 유럽의 낙하 테스트 기준은 우리와 정반대였다. 30cm 높이에서 떨어뜨려 열 개 중 두세 개는 오히려 깨져야 하는 기준이었다. 발림성과 사용감을 위해 어느 정도의 파손은 감수한다는, 완전히 다른 철학이었다. 선배들에게 품질 기준을 바이블처럼 받아들여 온 나에게, 리가노 컨설팅과의 만남은 큰 충격이자 깨달음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낙하 테스트 기준을 50cm까지 낮추고 또 몇년후 30cm까지 낮추게 된다. 대신 택배 과정에서 깨지지 않도록 포장 기준을 새로 마련했다. 품질의 개념을 ‘단단함’에서 ‘사용자의 경험’으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그 결과 2010년 무렵에는, 한국 화장품이 일본이나 유럽의 품질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듣게 되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젤리타정, 에어쿠션 같은 새로운 제형과 생산기술을 개발하면서, 마침내 글로벌사가 한국의 생산기술을 역수입해 가는 위치에까지 올랐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에어쿠션이 바로 2010년 전후 한국에서 탄생한 화장품이다. 벽돌 같은 팩트를 만들던 나라가, 세계가 배워 가는 기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 15년이 흘렀다. 이제 한국 화장품은 K뷰티 열풍을 등에 업고, 글로벌 시장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제품이 되었다. 이 모든 역사를 현장에서 함께해 오는 사이, 나 역시 어느덧 중년을 넘어서고 있다.
26년간 화장품 제조업에 몸담으며 배우고 겪은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남기는 일. 그것은 오래전부터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이 책은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오랜 꿈을 이루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이제, 그 꿈을 이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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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목차: 메이크업 생산기술 전체 목차
- 함께 보기: 1장. 화장품 산업과 메이크업 제품의 이해
- 함께 보기: 2장. 생산자가 알아야 할 원료 지식
- 참고 기관: 식품의약품안전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