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36장에서 자재를 ‘사는 일’, 37장에서 ‘두고 쓰는 일’을 다뤘다면, 이 장은 아예 생산의 일부를 밖에 맡기는 일 — 외주 임가공입니다. 공장을 운영하다 보면 임가공을 줘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납기를 맞춰야 하는데 내 라인만으로는 부족할 때, 사내에 그 설비가 없을 때, 그리고 외주 가공비가 사내에서 만드는 원가보다 쌀 때입니다. 문제는, 밖에 맡기는 순간 품질도 납기도 내 손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가공은 ‘누구에게 맡기느냐(업체 선정)’와 ‘어떻게 약속하느냐(계약)’에서 성패가 갈립니다.
이 장은 그 두 가지 — 업체를 어떻게 평가해 고르고, 계약서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 를 중심으로, 선정 프로세스 전체를 따라가며 정리합니다. 색조 화장품은 컬러 혼입·미생물·용기 클레임처럼 임가공에서 특히 사고가 크게 나는 품목이므로, 현장의 감각 그대로 꼼꼼히 짚겠습니다.
38-1. 왜 임가공을 주는가 — 그리고 선정 프로세스
먼저 임가공을 주는 이유를 분명히 해야, 무엇을 우선할지가 정해집니다. 이유는 대체로 셋입니다 — 납기(내 라인이 꽉 찼을 때), 설비 부재(그 공정 설비가 사내에 없을 때), 원가(외주 가공비가 사내 원가보다 쌀 때)입니다. 이유가 원가라면 가공비를, 납기라면 케파와 납기 준수를, 설비라면 그 공정의 품질 역량을 더 무겁게 봅니다.
임가공 업체 선정은 정해진 순서로 진행됩니다. 생산 가능 업체 조사 → 견적 요청 → 견적으로 영업이익률 확인 → 업체 방문 평가 → 임가공 계약 체결 → 발주서 전달(포장재·포장 사양서·표준품·작업지시서) → 최초 생산 현장 감리 → 입고 검사입니다. 이 가운데 계약 체결은 생산에 앞서 반드시 하고, 발주서에는 물건만이 아니라 표준품과 작업지시서, 포장 사양서를 함께 넘겨야 업체가 우리 기준대로 만듭니다.
38-2. 업체 조사와 견적 요청 — 견적을 정확히 받아야 나중에 안 싸운다
생산 가능한 업체를 찾는 길은 여럿입니다. 가장 안전한 것은 기존 거래 업체를 활용하는 것이고, 거기서 안 되면 지인 소개나 인터넷을 씁니다. 요즘은 화장품 종사자 커뮤니티(네이버 카페 등)에 “이런 제품을 생산할 업체를 찾는다”고 올리면 여러 업체가 연락을 주므로, 후보를 찾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견적 요청입니다. 제품 사양서와 유사 이미지를 업체에 전달해 임가공비(가공비) 견적을 받는데, 이때 정보를 대충 주면 나중에 반드시 문제가 됩니다. 업체가 정확한 조건을 모른 채 견적을 낮게 냈다가, 실제 생산에 들어가 “얘기했던 것과 다르다”며 가공비 인상을 요청하면 회사 이익이 줄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견적 단계에서 제품 이미지·실물, 포장 사양서, 수량, 요구 품질 수준, 그리고 특이사항까지 자세히 설명해야 합니다. 조건을 빠짐없이 준 견적이라야, 나중에 업체가 인상을 요청해도 “처음 조건 그대로”라며 대응할 수 있습니다. 견적을 정확히 받는 것은 가격 협상이 아니라 분쟁 예방입니다.
38-3. 현장 방문 평가 ① — 눈으로 보는 다섯 가지
업체를 고르는 핵심은 직접 찾아가 보는 것입니다. 서류로는 알 수 없는 것이 현장에 다 드러납니다. 회사마다 기준을 정해 두되, 눈으로 확인할 다섯 가지는 이렇습니다.
첫째, 정리정돈 상태. 현장과 부자재 창고에 들어가 바닥의 구획선, 선반 정돈을 봅니다. 특히 부자재 박스가 테이핑으로 밀봉되어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 색조는 부자재 창고에서 컬러(분체)가 날려 다른 자재로 혼입될 수 있어(25장), 박스를 밀봉하지 않으면 생산 중 색 사고로 이어집니다.
둘째, 작업자 복장. 머리카락 혼입을 막는 모자, 입안 미생물 전달을 막는 마스크(24장), 제품에 지문이 묻지 않게 하는 장갑을 착용하는지 봅니다. 신발·실내화 구분과 청결도 함께 봅니다.
셋째, 표준품 운영. 표준품에 표준품 라벨이 붙어 잘 보관되는지, 그리고 실제 생산 라인에 표준품·제품 사양서·작업지시서가 비치되어 누구나 볼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29장) — 이것이 없으면 우리 기준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넷째, 방충·방서와 교차오염. 제조업 승인을 받으려면 방충·방서 기준을 갖춰야 하는데, 업체가 바쁘면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벌레 유입, 교차오염 관리 상태를 반드시 체크합니다.
다섯째, 포장 상태·구성. 완성된 포장에 이물이나 벌레가 섞이지 않았는지 봅니다. 발견되면 반드시 보완을 요청합니다.
38-4. 현장 방문 평가 ② — 법무·위치·재무구조
현장이 좋아도 그것만으로 결정하면 안 됩니다. 서류와 조건으로 봐야 할 세 가지가 더 있습니다.
법무 — 자격과 준법. 그 업체가 화장품 제조업 등록이 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위치가 제조업 등록이 가능한 입지인지 확인합니다. 등록 없이 또는 부적법한 위치에서 만든 제품은, 식약처·환경 당국의 감사 때 우리에게까지 리스크가 번집니다. 폐기물 처리 규정 준수 여부도 같은 이유로 봅니다. 업체가 법적 리스크를 안고 있으면 거래 자체가 문제가 됩니다.
위치 — 관리 범위. 업체가 너무 멀면 자주 찾아가기 어려워 관리 범위 밖으로 벗어나고, 현장 감리도 소홀해집니다. 위치도 중요한 선정 변수입니다.
재무구조 — 클레임 감당 능력. 이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단순 포장 임가공은 잘못돼도 재작업 인건비 손해로 끝나지만, 충전·포장 임가공은 용기 스크래치나 내용물 미생물 오염이 나면 수백만~수천만 원의 클레임이 발생합니다. 영세한 업체는 이 비용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채비율 등 재무 상태를 확인해, 클레임을 책임질 수 있는 업체인지를 반드시 봐야 합니다. 여기에 설립연도·인력 현황·조직도·케파 같은 기본 정보도 함께 파악합니다.
38-5. 업체 평가 체크리스트 — 점수로 판정한다
방문 평가는 인상으로 끝내지 않고 체크리스트로 점수화해야 객관적입니다. 앞의 항목들 — 정리정돈, 작업 복장, 표준품 운영(라인에 표준품·작업지시서·포장 사양서 비치), 방충·방서, 교차오염, 재무구조(클레임 감당 능력) 등 — 을 표로 만들어 항목마다 점수를 매깁니다.
운영은 간단합니다. 총점 70점 이상이면 통과시켜 거래를 진행하고, 70점 미만이면 보완을 요청한 뒤 재실사합니다. 배점과 통과 기준은 회사가 제품·리스크에 맞춰 정하면 됩니다. 핵심은, 담당자가 바뀌어도 같은 잣대로 업체를 평가할 수 있게 기준을 문서로 고정하는 것입니다. 인상만으로 고른 업체는 문제가 생겼을 때 ‘왜 그 업체였는가’를 설명할 수 없지만, 체크리스트로 고른 업체는 근거가 남습니다. 각회사에서 필요한 사항에 대해 중요도에 따라 그 항목을 선택하고 체크리스트와 배점을 만들어 평가 근거로 남깁니다.
38-6. 임가공 계약서 — 왜 필요하고, 어떻게 맺는가
아무리 좋은 업체를 골라도, 계약서가 없으면 사고가 났을 때 법적으로 다툴 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임가공은 생산에 앞서 반드시 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대표이사 추천으로 정했든, 첫 거래든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신제품마다 계약서를 새로 쓰면 업무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임가공 기본계약서’를 한 번만 체결하고, 그 안에 “개별 단가는 건별로 별도 협의한다”는 규정을 두어, 제품별 가공비는 그때그때 협의로 정합니다. 기본계약 한 장이 모든 거래의 공통 규칙이 되고, 단가만 유연하게 붙는 구조입니다.
계약서를 쓸 때의 자세는 36장 물품공급계약서와 같습니다 — 명확한 용어로, 자사에 손해가 되는 조항이 없도록, 그러면서도 상대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균형 있게 씁니다. 인터넷의 임가공 계약서 양식을 그대로 쓰지 말고, 한 조항씩 읽어 가며 우리 상황에 맞게 손봐야 합니다. 다음 두 절에서 반드시 담아야 할 조항을 돈과 품질·납기로 나눠 보겠습니다.
38-7. 계약서 핵심 조항 (1) — 돈에 관한 약속
계약서에서 먼저 명확히 할 것은 돈입니다. 기본 정보(상호·주소)와 함께 세 가지를 분명히 합니다.
대금 결제 방식. 언제, 어떻게 주는가입니다. 예컨대 ‘그달 마감 후 한 달 뒤 지급’처럼 시점을 정하고, 현금이냐 어음이냐까지 명시합니다.
물류비 부담. 자재와 완제품을 옮기는 비용을 누가 내는지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재를 임가공 업체로 보내는 비용은 오더를 주는 회사가, 완제품을 납품하는 비용은 임가공 업체가 부담합니다. 그런데 수량이 적으면 함정이 있습니다 — 물건값이 10만 원인데 거리가 멀어 물류비가 20만 원 나오는 식입니다. 그래서 일정 수량(MOQ) 미만의 소량 건은 물류비를 오더 주는 회사가 부담한다는 식으로, 예외도 함께 규정합니다.
주말·특근 할증. 납기가 급해 주말·특근을 요청할 때의 비용입니다. 이때 인건비는 오르지만 설비 감가·경비까지 오르는 것은 아니므로, 총원가 전체가 아니라 가공비에만 일정 할증(예: 1.3배)을 적용한다는 규정을 두면 합리적입니다.
38-8. 계약서 핵심 조항 (2) — 품질·납기·책임
돈만큼 중요한 것이 품질·납기와 사고 책임입니다. 임가공에서 실제 손실이 나는 지점이 여기이므로, 다음을 빠짐없이 담습니다.
로스와 수율. 로스에는 원부자재 자체의 로스와 생산 중 발생하는 생산 로스(사파 로스)가 있는데, 사파 로스는 보통 3% 미만으로 관리하도록 규정합니다. 처음 임가공을 하면 수율이 낮게 나오기 마련인데(예: 예상 97%인데 실제 90%), 그 초과 로스가 업체 귀책이면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수율 기준과 책임을 명시합니다.
파손·분실 보상. 업체가 자재를 받은 이후부터 완제품 납품 전까지 발생한 파손·분실은 그 업체가 책임진다는 규정을 둡니다.
납기와 지체상금. 전속 업체가 아니면 다른 회사 오더를 먼저 처리해 우리 납기가 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발주 후 며칠 이내 납품(예: 7일)을 정하고, 늦으면 하루당 대금의 일정 비율(예: 1/100)을 차감하되 최대 상한(예: 30%)을 두는 지체상금 규정을 넣습니다.
현장 수시 방문. 업체가 보안을 이유로 방문을 꺼리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제품의 품질을 확인하려면 언제든 현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계약서에 명기합니다. 여기에 계약 갱신 조건·계약일과, 협의되지 않은 사항은 협의하되 안 되면 관할 법원을 따른다는 조항으로 마무리합니다.
38-9. 최초 생산 현장 감리와 입고 검사
계약을 맺고 발주서(포장재·포장 사양서·표준품·작업지시서)를 넘겼다고 끝이 아닙니다. 첫 생산이 가장 위험합니다. 업체가 우리 기준을 처음 적용하는 순간이라, 표준품과 다르게 나오거나 사양을 오해하는 일이 흔합니다.
그래서 신제품 최초 생산 때는 현장에 직접 가서 감리합니다. 라인에 표준품·사양서·작업지시서가 제대로 비치됐는지, 색상·충전량·포장이 표준대로 나오는지를 초물(첫 제품) 단계에서 확인해, 문제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잡습니다. 초물에서 잡으면 몇 개로 끝날 문제가, 놓치면 전 로트 불량이 됩니다.
납품된 제품은 우리 공장의 입고 검사(13·15장)를 그대로 거칩니다. 임가공품이라고 검사를 생략하면 안 됩니다 — 오히려 밖에서 만든 만큼 더 꼼꼼히 봐야 합니다. 최초 생산 감리와 입고 검사, 이 두 관문이 ‘밖에 맡긴 품질’을 우리 기준으로 되돌리는 마지막 장치입니다.
38-10. 38장 요약 — 잘 고르고, 잘 약속하고, 끝까지 본다
외주 임가공은 누구에게 맡기느냐와 어떻게 약속하느냐에서 결판납니다. 임가공을 주는 이유(납기·설비·원가)를 분명히 하고, 업체 조사 → 견적(조건을 자세히 줘 인상 분쟁 예방) → 방문 평가 → 계약 → 발주 → 최초 감리 → 입고 검사의 순서를 지킵니다. 방문 평가는 현장(정리정돈·복장·표준품·방충방서·포장)과 법무·위치·재무(클레임 감당 능력)를 체크리스트로 점수화(70점 기준)하고, 계약은 기본계약 한 번 + 개별 단가 별도로 맺되 돈(대금·물류비·특근 할증)과 품질·납기·책임(로스·수율·파손·지체상금·수시 방문)을 빠짐없이 담습니다. 그리고 첫 생산 감리와 입고 검사로 밖에 맡긴 품질을 우리 기준으로 되돌립니다.
이로써 제6부(원가·구매·자재 관리)를 마칩니다. 임율에서 시작해 제조원가·견적·구매·재고·외주까지, 제품을 ‘얼마에 만들고 어떻게 조달하는가’의 전 과정을 짚었습니다. 이제 제7부에서는 이 모든 일을 실제로 해내는 사람과 조직으로 이야기를 옮겨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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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기관: 식품의약품안전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