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앞의 8장까지 우리는 가루를 누르고(성형), 물과 기름을 섞고(유화), 왁스를 녹여 굳히는(무수·유성) 세계를 지나왔습니다. 이번 9장의 주인공은 흐르고 맺히는 제형입니다. 립글로스처럼 촉촉하게 흐르고, 틴트처럼 물처럼 발리며, 아이라이너처럼 가는 선으로 그려지고, 마스카라처럼 속눈썹에 맺히는 — 액상(液狀)과 젤(gel) 제형입니다. 겉모습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에는 공통의 뿌리가 있습니다. 바로 ‘색소를 액체에 곱게 분산시켜, 흐름(점도)을 설계하고, 발린 뒤 지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장은 분산·유변(흐름)·필름 형성이라는 세 축으로 읽으면 한결 명쾌합니다.
9-1. 액상·젤 제형이란 — 흐르고 맺히는 제형
액상·젤 제품은 크게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집니다(그림 9-1). 첫째는 비히클(vehicle, 매질)입니다. 색소와 성분을 담아 흐르게 하는 바탕으로, 물(수성)·오일(유성)·솔벤트(휘발성) 중 하나 또는 조합을 씁니다. 이 비히클이 무엇이냐가 제품의 성격(산뜻함·지속력·건조 속도)을 크게 좌우합니다. 둘째는 색소입니다. 아이라이너·마스카라의 검정은 카본블랙, 그 밖의 색은 산화철·유기 안료·염료가 냅니다. 셋째는 점증제(레올로지 조절제)로, 검(gum)·점토·폴리머가 흐름과 점도를 잡아 줍니다. 넷째는 필름포머(피막 형성제)로, 발린 뒤 얇은 막을 만들어 색을 붙들고 지속력·워터프루프를 냅니다.
여기에 더해, 눈가에 쓰는 아이라이너·마스카라와 물을 함유한 제품은 미생물 관리(방부)와 저자극이 특히 중요합니다. 눈 점막과 맞닿는 만큼, 다른 어떤 제형보다 위생과 안전에 엄격해야 합니다.

9-2. 제품군 — 립글로스·틴트·아이라이너·마스카라
같은 액상·젤 계열이라도 제품마다 급소가 다릅니다(그림 9-2).
립글로스는 폴리부텐 같은 점착성 오일을 바탕으로 한 고광택 젤입니다. 투명감과 광택, 그리고 입술에 오래 머무는 밀착이 관건이라, 점도와 투명도 관리가 핵심입니다. 틴트는 물·알코올을 바탕으로 염료가 입술이나 볼을 물들이는 제품으로, 비히클이 휘발한 뒤 남는 착색과 지속력이 생명입니다. 아이라이너(리퀴드)는 수성 필름포머에 카본블랙을 분산한 제품으로, 가는 선이 또렷하게 그려지고 번지지 않는 것이 급소입니다. 마스카라는 왁스·필름포머·카본블랙을 물이나 솔벤트에 섞은 제형으로, 속눈썹에 컬·볼륨·길이를 주면서 뭉치지 않고 번지지 않아야 합니다.
정리하면, 립글로스는 광택·점도, 틴트는 착색·지속, 아이라이너는 선명·비번짐, 마스카라는 컬·볼륨과 뭉침 방지가 각각의 급소입니다. 공통 뼈대는 같아도, 어디에 힘을 줄지는 제품마다 다릅니다.

9-3. 공정을 한눈에 — 분산이 중심이다
액상·젤 공정의 큰 줄기는 이렇습니다(그림 9-3). 비히클 준비 → 색소 분산 → 점도·필름포머 조정 → 여과·탈포 → 충전입니다. 먼저 물·오일·솔벤트로 비히클을 만들고, 여기에 색소(특히 카본블랙)를 넣어 곱게 분산시킵니다. 이어 점증제로 흐름을 잡고 필름포머로 지속력을 부여한 뒤, 이물과 기포를 걸러(여과·탈포) 가는 용기에 정밀하게 충전합니다. 유화형 마스카라라면 이 사이에 유화 공정(7장)이 들어가고, 무수 립글로스라면 가열 용해가 들어가는 식으로 제품에 따라 변주가 있지만, ‘분산으로 색을 잡고 점도로 흐름을 잡는다’는 골격은 같습니다.

9-4. 분산 — 카본블랙과의 싸움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의 검정을 내는 카본블랙은 다루기 까다로운 색소입니다. 입자가 매우 작고 가벼워 잘 뭉치고 날리며, 한 번 뭉치면 풀기 어렵습니다. 분산이 부족하면 검정이 회색빛으로 탁해지고, 도포 시 알갱이가 서걱거리며, 뭉쳐서 번짐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카본블랙은 비히클에 충분히 젖도록 두었다가 고전단으로 미세 분산하고, 분산 안정제로 다시 뭉치지 않게(재응집 방지) 잡아 줍니다.
이 미세 분산의 주력 설비가 비드밀(bead mill)과 호모믹서입니다(그림 9-4). 비드밀은 챔버 안을 가득 채운 작은 비드(구슬) 사이로 내용물을 통과시켜, 비드끼리 부딪히며 생기는 전단(shear)과 충돌·압력으로 색소 덩어리를 잘게 부수는 설비입니다. 카본블랙처럼 뭉치기 쉬운 색소를 미세하고 균일하게 푸는 데 특히 효과적입니다. 호모믹서는 고속 전단으로 유화·분산을 돕고 진공으로 기포를 빼는 역할을 합니다. 색소 분산의 원칙은 8장 립스틱의 색소 베이스와 같습니다 — 곱고, 고르고, 다시 뭉치지 않게. 다만 액상·젤에서는 비히클이 묽어 침강(가라앉음)이 쉬우므로, 점증제로 붙들어 두는 설계가 함께 가야 합니다. 분산의 완성도는 곧 검정의 깊이와 선의 또렷함으로 나타납니다.

9-5. 점도와 유변 — 흐름을 설계한다
액상·젤 제품에서 가장 특징적인 기술이 유변(流變, rheology) 설계입니다. 좋은 아이라이너나 마스카라는 모순된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해야 합니다 — 용기 안에서는 흘러내리지 않게 되직하고, 브러시로 바를 때는 잘 펴지도록 묽어야 합니다. 이 상반된 성질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요변성(搖變性, thixotropy) 또는 전단박화(shear-thinning)입니다. 힘을 주지 않으면(정지) 점도가 높아 형태를 유지하고, 힘을 주면(전단) 점도가 낮아져 잘 흐르는 성질입니다(그림 9-5).
이 성질은 점증제로 만듭니다. 검(잔탄검 등)·점토(벤토나이트·헥토라이트)·회합성 폴리머가 정지 상태에서 그물 구조를 만들어 되직하게 하고, 전단이 걸리면 그 구조가 풀려 묽어집니다. 그래서 점증제의 선택과 양이 곧 ‘발림성과 흘러내림’의 균형을 결정합니다. 너무 되면 그리기 뻑뻑하고, 너무 묽으면 흘러내리고 번집니다. 이 적정선을 찾는 것이 액상·젤 처방·생산의 감각입니다.

9-6. 필름 형성과 도포구 — 지속력과 마무리
발린 뒤에 색이 오래 남는 힘은 필름포머에서 나옵니다. 비히클(물·솔벤트)이 휘발하면서 필름포머가 얇은 막을 형성해 색소를 피부·속눈썹에 붙들어 두는 것입니다. 이 막이 물에 견디면 워터프루프, 유분·마찰에 견디면 스머지프루프가 됩니다. 틴트의 지속력, 아이라이너의 비번짐, 마스카라의 워터프루프가 모두 이 필름 설계의 결과입니다. 다만 막이 너무 강하면 지우기 어렵고 뭉치므로, 지속력과 사용감·제거성의 균형을 잡습니다.
액상·젤 제품은 도포구와 한 몸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그림 9-6). 마스카라는 브러시(스파이럴·실리콘 등)의 형태가 컬·볼륨·길이를 좌우하고, 용기 입구의 와이퍼가 브러시에 묻는 양을 일정하게 훑어 뭉침을 막습니다. 아이라이너는 펠트팁·붓·펜 타입에 따라 선의 굵기와 그리기 감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내용물과 도포구·용기를 한 세트로 함께 설계해야 하며, 충전도 이 도포구에 맞춰 정밀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9-7. 충전 — 가는 용기에 정밀하게
액상·젤 제품은 용기가 가늘고(마스카라·아이라이너 튜브) 도포구가 함께 들어가므로, 충전이 까다롭습니다. 충전량이 일정해야 브러시에 묻는 양이 고르고, 공기가 갇히면 도포 중 튀거나 마름을 부릅니다. 그래서 점도가 높은 내용물일수록 탈포(진공)를 확실히 하고, 노즐과 충전 속도를 내용물 점도에 맞춰 잡습니다(그림 9-7). 또 물·솔벤트가 든 제품은 충전 후 밀폐가 생명입니다 — 조금만 새어도 비히클이 날아가 굳어 버립니다. 마스카라·아이라이너의 와이퍼는 브러시 조절뿐 아니라 이 밀폐와 건조 방지에도 관여합니다.

9-8. 대표 불량과 트러블슈팅
액상·젤의 대표 불량은 제품 성격을 그대로 반영합니다(그림 9-8). 첫째 뭉침(clumping)은 마스카라의 고질병으로, 왁스·필름포머 과다나 브러시·와이퍼 부적, 사용 중 건조가 원인입니다. 둘째 굳음·건조는 물·솔벤트가 날아가 생기며, 충전 후 밀폐 불량이나 와이퍼 부적이 주범입니다. 셋째 번짐(smudge)은 필름 형성이 부족하거나 유분이 과한 경우로, 필름포머·유분 균형을 봅니다. 넷째 분리·침강은 유화 불안정이나 안료가 가라앉은 것으로, 유화 조건과 점증제(붙들어 두는 힘)를 점검합니다. 다섯째 색이 회색빛으로 탁함은 카본블랙 분산 부족이 원인입니다. 여섯째 기포는 점도가 높아 탈포가 덜 된 경우로, 진공 탈포를 다시 겁니다.
진단의 순서는 늘 같습니다 — 색 문제면 분산을, 흐름·발림 문제면 점도(요변성)를, 지속·번짐 문제면 필름포머를, 굳음·건조면 밀폐·와이퍼를 되짚습니다.
정리하면 액상·젤 공정은 ‘색소를 곱게 분산해, 흐름을 설계하고, 필름으로 남기고, 가는 용기에 정밀하게 담는’ 공정입니다. 가루가 공기와, 크림이 온도와, 립스틱이 왁스와 싸웠다면, 액상·젤은 흐름(유변)과 필름을 다루는 기술입니다. 그리고 눈가에 쓰는 제품인 만큼, 그 모든 기술 위에 위생과 안전이라는 대전제가 놓입니다.
이로써 색조 메이크업의 주요 제형 — 파우더·유화·무수유성·액상젤 — 공정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개별 공정을 넘어, 이 모든 생산을 떠받치는 품질관리와 GMP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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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기관: 식품의약품안전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