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생산자가 알아야 할 기초 원료

1장에서 스킨케어를 ‘제형으로 보는 눈’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제형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 재료가 원료입니다. 처방서를 받아 든 생산자에게 원료명이 낯선 외국어처럼 늘어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스킨케어 원료는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생산자의 눈으로 보면 몇 개의 무리로 정리됩니다. 이 장에서는 그 무리를 나누고, 각 원료가 어떤 성질을 가졌으며 현장에서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짚습니다. 개별 원료를 백과사전처럼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원료가 수상인지 유상인지, 뜨겁게 녹여야 하는지, 언제 넣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감각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2.1 모든 원료는 먼저 수상과 유상으로 갈린다

스킨케어 원료를 다룰 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습니다. “이건 물에 녹나, 기름에 녹나.” 유화 제품은 물로 이루어진 수상(水相)과 기름으로 이루어진 유상(油相)을 따로 준비해 하나로 합치는 과정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원료를 받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수상 쪽인지 유상 쪽인지부터 나눕니다. 이 분류가 곧 그 원료를 어느 탱크에, 몇 도에서, 어느 순서로 넣을지를 결정합니다.

크게 보면 원료는 네 무리입니다. 물에 녹아 수상을 이루는 것들(정제수·보습제·수용성 점증제), 기름으로 유상을 이루는 것들(오일·왁스·고급알코올), 그 둘을 이어 붙이는 계면활성제(유화제), 그리고 제품을 지키고 꾸미는 기능성 원료(활성성분·방부제·향·색소)입니다. 뒤의 두 무리 가운데 활성성분은 3장에서, 향·색소·방부는 4장에서 따로 자세히 다루므로, 이 장에서는 앞의 세 무리 — 수상, 유상, 계면활성제 — 에 집중합니다.

2.2 수상 원료 — 물과 물에 녹는 것들

정제수. 스킨케어 원료의 맏이는 언제나 정제수입니다. 제품의 절반에서 많게는 열에 아홉까지가 물입니다. 그런데 이 ‘물’은 수돗물이나 지하수가 아니라, 이온과 미생물, 유기물을 걷어낸 정제수여야 합니다. 물속에 칼슘·마그네슘 같은 경도 성분이 남아 있으면 점증제가 제대로 부풀지 않거나 유화가 불안정해지고, 미생물이 남아 있으면 방부 설계가 아무리 좋아도 처음부터 오염된 제품이 됩니다. 그래서 정제수는 ‘원료’인 동시에 ‘설비’의 문제이며, 이 책은 20장을 통째로 정제수 시스템에 할애합니다. 생산자는 매일 첫 물을 받기 전에 정제수의 상태(전도도, 미생물)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보습제(휴멕턴트). 물 다음으로 많이 들어가는 수상 원료가 보습제입니다. 공기 중이나 피부 깊은 층의 수분을 끌어당겨 붙잡아 두는 원료로, 글리세린이 대표선수입니다. 이 밖에 부틸렌글라이콜(BG), 프로판다이올, 프로필렌글라이콜, 다이프로필렌글라이콜, 베타인, 판테놀, 그리고 소듐하이알루로네이트(히알루론산)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생산자 입장에서 보습제의 성격은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첫째, 대부분 점성이 있고 끈적이며, 양이 많아지면 사용감이 무거워집니다. 둘째, 글라이콜류의 일부(BG, 프로판다이올 등)는 그 자체로 약한 방부 보조 효과가 있어 무방부 설계에서 활용됩니다(9장). 히알루론산처럼 소량으로도 물을 크게 잡아 점도를 올리는 원료는 수화(불려 녹이는 것)에 시간이 걸리므로, 미리 물에 풀어 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수용성 점증제. 수상의 점도를 잡아 주는 원료입니다. 카보머(가교 폴리아크릴산), 잔탄검을 비롯한 검류, 하이드록시에틸셀룰로오스, 소듐폴리아크릴레이트 계열 등이 여기에 듭니다. 이들은 물을 머금어 부풀면서 점도를 만드는데, 뭉치지 않게 분산시키는 일이 관건입니다. 특히 카보머는 물에 풀 때는 산성이라 점도가 낮다가, 중화제(수산화나트륨, 트라이에탄올아민, 아르기닌 등)로 pH를 올려 주면 그제야 투명하게 부풀어 오릅니다. 이 ‘중화’라는 한 단계가 겔·세럼 공정의 핵심이며, 점증제의 종류와 유변학은 7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여기서는 “수상에는 점도를 만드는 원료가 따로 있고, 그중 상당수는 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풀거나 중화하는 손질이 필요하다”는 정도만 잡아 두면 됩니다.

2.3 유상 원료 — 기름과 기름에 녹는 것들

유상은 성격이 제각각인 기름들의 모임입니다. 같은 ‘오일’이라도 가볍고 산뜻한 것부터 무겁고 번들거리는 것까지 폭이 넓어서, 어떤 유상을 짜느냐가 제품의 발림성과 안정성을 크게 좌우합니다. 유상 원료는 대략 이렇게 나뉩니다.

무리대표 원료성격취급 주의
에스터 오일에틸헥실팔미테이트, 카프릴릭/카프릭트라이글리세라이드가볍고 잘 퍼짐, 산뜻대체로 안정, 다루기 쉬움
식물성 오일호호바, 아르간, 올리브, 마카다미아피부 친화적, 고급감산패(산화)에 약함, 산화방지제 필요
광물성 오일미네랄오일, 페트롤라툼매우 안정, 폐색막 형성무겁고 번들거림, 산패 거의 없음
실리콘다이메티콘, 사이클로펜타실록세인매끄러운 발림, 실키유화 시 상용성 확인 필요
왁스비즈왁스, 카나우바왁스고형, 굳기·구조 부여반드시 가열 용해(융점 확인)
고급알코올세틸알코올, 스테아릴알코올, 세토스테아릴알코올점도·컨시스턴시, 유화 보조고형, 가열 용해
지방산스테아릭애씨드, 팔미틱애씨드유화·진주광택, 비누화 관여고형, 가열 용해

여기서 생산자가 특히 기억할 것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산패입니다. 식물성 오일과 일부 불포화 에스터는 공기·빛·열·금속에 노출되면 산화되어 냄새(산패취)와 색을 잃습니다. 그래서 이런 오일이 많은 처방에는 토코페롤(비타민E) 같은 산화방지제가 함께 들어가고, 보관도 서늘하고 빛이 들지 않는 곳이어야 합니다. 개봉한 오일 드럼을 오래 방치하면 그 배치의 변취 원인이 됩니다.

다른 하나는 고형 유상의 용해입니다. 왁스, 고급알코올, 지방산, 고형 버터류는 상온에서 굳어 있어 반드시 가열해 녹여야 유상에 고르게 섞입니다. 각 원료의 융점보다 충분히 높은 온도(보통 유상 전체를 70~80℃로)로 데워 완전히 녹인 뒤 수상과 합쳐야 하며, 덜 녹은 채로 유화하면 나중에 하얀 알갱이나 결정성 이물의 원인이 됩니다(33장). “유상이 맑게 다 녹았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유화 전 기본 점검입니다.

2.4 계면활성제와 HLB — 물과 기름을 잇는 원료

수상과 유상은 그냥 두면 섞이지 않습니다. 이 둘을 억지로 붙여 유화가 되게 하는 원료가 계면활성제, 그중에서도 유화제입니다. 계면활성제 분자는 물을 좋아하는 머리(친수기)와 기름을 좋아하는 꼬리(친유기)를 한 몸에 지녀, 물과 기름의 경계에 늘어서서 둘을 이어 줍니다. 유화의 원리 자체는 5장에서 깊이 다루므로, 여기서는 원료로서의 계면활성제와 이를 고르는 잣대인 HLB를 잡아 둡니다.

계면활성제는 물에 녹았을 때의 전하로 나눕니다. 음이온성(세정력이 강해 클렌징에 많이 씀), 양이온성(정전기 방지·컨디셔닝, 헤어에 많음), 양쪽성(순하고 기포 보조), 그리고 비이온성이 있습니다. 스킨케어 유화에서 주로 쓰는 것은 자극이 적은 비이온성 유화제입니다. 글리세릴스테아레이트, 세테아릴글루코사이드, 스테아레스 계열, 폴리글리세릴 에스터, 폴리소르베이트 등이 여기에 듭니다.

유화제를 고를 때 쓰는 대표적인 잣대가 HLB(친수성-친유성 균형)입니다. 0에 가까울수록 기름을 좋아하고, 20에 가까울수록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대략 다음과 같이 쓰임이 갈립니다.

HLB 범위성격주된 용도
3~6친유성W/O(유중수형) 유화제
7~9중간습윤·분산
8~16친수성O/W(수중유형) 유화제
15~18강친수성가용화제(투명 제형)

여기에 한 가지 실무 개념이 더 있습니다. 유화하려는 오일마다 필요로 하는 HLB 값이 다르다는 것(required HLB)입니다. 예컨대 어떤 오일은 HLB 10 근처의 유화제라야 잘 유화되고, 다른 오일은 12가 맞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친유성 유화제와 친수성 유화제를 섞어 그 오일에 맞는 HLB를 만들어 씁니다. 처방에 유화제가 두 종류 이상 들어 있는 것은 대개 이 때문입니다. 생산자가 임의로 한쪽 유화제를 빼거나 바꾸면 전체 HLB가 어긋나 유화가 깨질 수 있으니, 유화제는 처방대로 종류와 양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2.5 원료를 다루는 현장의 기본

원료의 성질을 알았다면, 다음은 그것을 상하지 않게, 정확하게 쓰는 일입니다. 몇 가지 현장 원칙을 정리합니다.

보관. 오일류는 서늘하고 빛이 들지 않는 곳에, 개봉 후에는 밀폐해 산패를 막습니다. 왁스·고급알코올 같은 고형 원료는 흡습·오염을 막아 보관하고, 히알루론산 등 분체 활성은 습기에 덩어리지지 않게 관리합니다. 개봉일을 적어 선입선출(먼저 들어온 것을 먼저 쓰기)을 지키는 것이 변질을 막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칭량. 물이 대부분인 수상 원료는 소량 오차가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소량으로 큰 영향을 주는 원료 — 점증제, 중화제, 유화제, 활성성분, 방부제 — 는 칭량 정밀도가 곧 품질입니다. 카보머 몇 g 차이로 점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중화제 양이 어긋나면 pH가 틀어집니다. 미량 원료일수록 정밀 저울로, 처방 소수점까지 지켜 다는 것이 재현성의 출발점입니다(10장에서 칭량을 자세히 다룹니다).

투입 온도와 순서. 원료마다 넣어도 되는 온도와 순서가 정해져 있습니다. 왁스·고급알코올은 유상에서 녹여 뜨거울 때, 열에 약한 활성성분과 향은 유화가 끝나고 식은 뒤(대개 40℃ 안팎)에 넣습니다. 이 순서를 어기면 활성이 파괴되거나 향이 날아갑니다. 3장에서 다룰 활성성분 취급이 바로 이 ‘온도와 순서’의 문제입니다.

상용성. 원료끼리, 그리고 원료와 용기 사이에도 궁합이 있습니다. 어떤 방부제는 특정 계면활성제에 붙잡혀 힘을 잃고(9장), 어떤 활성은 특정 금속이나 pH에서 변색합니다. 원료와 용기 재질의 상용성은 24장에서 따로 다루지만, 새 원료나 새 용기를 처음 쓸 때는 반드시 소량으로 미리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2.6 정리하며

이 장의 요점은 이렇습니다. 원료를 받으면 먼저 수상인지 유상인지, 계면활성제인지를 가른다. 수상에는 정제수·보습제·수용성 점증제가 있고, 점증제는 풀거나 중화하는 손질이 필요하다. 유상은 가벼운 에스터부터 무거운 광물유·고형 왁스까지 성격이 다양하며, 산패와 가열 용해를 늘 염두에 둔다. 물과 기름을 잇는 유화제는 HLB로 고르고, 오일에 맞는 HLB를 맞추기 위해 여러 종류를 섞어 쓰므로 임의로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원료든 보관·칭량·투입 온도·상용성의 기본을 지켜야 그 성질을 온전히 살릴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스킨케어에서 가장 까다로운 원료, 곧 비타민C와 레티놀 같은 기능성 활성성분으로 들어갑니다. 이 원료들은 넣고 나서도 계속 변하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원료여서, 온도와 순서와 궁합을 조금만 놓쳐도 제품의 성패가 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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