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가 겪은 미생물 사고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원인이 처방도 원료도 아니고 물이었던 일입니다. 어느 여름, 한 토너 배치에서 미생물이 기준을 넘었습니다. 방부 처방은 그대로였고, 원료도 적합 판정을 받은 것이었고, 작업자도 늘 하던 대로 했습니다. 그런데도 균이 나왔습니다. 정제수 배관의 한쪽 끝, 평소 물이 잘 흐르지 않고 고여 있던 막다른 구간(데드레그)이 있었는데, 거기서 미생물이 자라 막(바이오필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구간을 지난 물이 배치로 들어간 겁니다. 물이 상하면, 그 물로 만든 제품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상합니다.
스킨케어는 물의 산업입니다. 스킨·토너는 대부분이 물이고, 로션·크림·에센스도 절반 넘게 물입니다. 그 물이 바로 정제수입니다. 정제수는 우리 제품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주원료이면서, 동시에 가장 관리가 어려운 원료입니다. 눈에는 다 똑같이 맑은 물로 보이지만, 그 안에 미생물이 얼마나 있는지, 이온과 불순물이 얼마나 녹아 있는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은 미생물이 가장 좋아하는 환경입니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그 정제수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깨끗하게 유지하며, 그 물과 설비를 어떻게 씻고, 씻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지를 다룹니다. 좋은 제품은 좋은 물과 깨끗한 설비에서 나옵니다.
20.1 정제수는 스킨케어의 주원료다
먼저 왜 수돗물이나 지하수를 그냥 쓰지 않고 정제수를 만들어 쓰는지부터 짚겠습니다. 원수(수돗물·지하수)에는 여러 가지가 녹아 있습니다. 칼슘·마그네슘 같은 경도 성분, 철·망간 같은 금속, 염소(소독제), 각종 이온, 유기물, 그리고 미생물입니다. 이것들을 그대로 제품에 넣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경도 성분(칼슘·마그네슘)은 계면활성제와 반응해 침전을 만들고 유화를 방해합니다. 금속 이온(철·구리 등)은 활성성분의 산화와 변색을 촉진합니다. 앞에서 비타민C나 향이 금속 때문에 변색·변취된다고 했던 것을 떠올려 주십시오. 염소는 일부 원료와 반응하고 향을 변질시킵니다. 이온이 많으면 전도도가 높아 일부 제형의 안정성에 영향을 주고, 유기물과 미생물은 그 자체로 오염원입니다. 그래서 이 불순물들을 걸러 낸 깨끗한 물, 정제수를 만들어 씁니다.
정제수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온과 불순물, 미생물을 최대한 제거한 물”입니다. 우리 제품의 바탕이 되는 물이니, 이 물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 위에 아무리 좋은 원료를 얹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정제수를 “보이지 않는 주원료”라고 부릅니다. 함량으로는 가장 많이 들어가는데 라벨 맨 앞의 ‘정제수’ 한 줄로만 표시되고, 눈에는 그냥 물이라 소홀히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을 소홀히 한 공장은 반드시 미생물이나 변색으로 대가를 치릅니다.
20.2 정제수 제조 공정 — 원수에서 순수까지
정제수는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집니다. 원수의 불순물을 단계적으로 걷어 내는 과정입니다. 대표적인 흐름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공장마다 구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큰 줄기는 비슷합니다.
| 단계 | 하는 일 | 걸러 내는 것 |
|---|---|---|
| 전처리 여과 | 모래·다층 여과, 카트리지 필터 | 굵은 입자·부유물 |
| 활성탄 흡착 | 활성탄으로 흡착 | 염소·유기물·냄새 |
| 연수(연화) | 이온교환 수지로 경도 제거 | 칼슘·마그네슘(경도) |
| 역삼투(RO) | 고압으로 반투막 통과 | 이온·유기물·미생물 대부분 |
| 이온교환·EDI | 남은 이온을 마저 제거 | 잔여 이온(고순도화) |
| 저장·순환 | 저장탱크와 순환 배관, UV·필터 | 재오염 방지(유지 단계) |
핵심 원리 몇 가지만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전처리는 굵은 것부터 차례로 걸러 뒤 설비를 보호하는 단계입니다. 활성탄은 숯이 냄새와 염소, 유기물을 빨아들이는 성질을 이용합니다. 연수는 경도 성분을 다른 이온으로 바꿔치기해 물을 부드럽게 만들어, 뒤의 RO막을 보호합니다.
가장 중요한 두 단계가 역삼투(RO)와 이온교환입니다. 이 둘은 하는 일이 달라서, 구분해서 이해하면 정제수 시스템 전체가 쉽게 보입니다.
역삼투(RO)는 물리적으로 걸러 내는 방식입니다. 아주 촘촘한 반투막에 물을 고압으로 밀어붙이면, 물 분자는 통과하고 대부분의 이온·유기물·미생물·입자는 막에 걸려 농축수로 버려집니다. 한 단계로 불순물의 대부분을 한꺼번에 제거하는 주력 공정입니다. 설비는 전처리 필터, 고압펌프, RO 막 모듈, 그리고 깨끗해진 투과수와 버려지는 농축수 배관으로 구성됩니다. 투입한 물의 일부(보통 절반 남짓에서 7할 정도)만 투과수로 쓰고 나머지는 농축수로 버리는데, 이 비율을 회수율이라고 합니다. RO 막은 쓰다 보면 표면에 때가 끼거나(파울링) 스케일이 앉아 성능이 떨어지므로, 전처리를 잘 해 주고 주기적으로 세정·교체합니다.

이온교환은 화학적으로 이온을 바꿔치기하는 방식입니다. 수지라고 부르는 작은 알갱이가, 물에 녹은 양이온을 수소이온(H⁺)으로, 음이온을 수산화이온(OH⁻)으로 교환해 붙잡습니다. 빠져나온 H⁺와 OH⁻는 서로 만나 물이 되지요. 이렇게 남은 이온까지 마저 빼면 전도도가 아주 낮은 고순도 물이 됩니다. 구성은 양이온 수지탑과 음이온 수지탑을 따로 두는 2탑식이나, 둘을 섞어 한 탑에 넣는 혼상(Mixed-bed) 방식이 있습니다. 수지는 이온을 다 붙잡으면 소진되므로, 산(양이온 수지)과 알칼리(음이온 수지)로 재생하거나 교체합니다. 다만 이온교환은 이온은 잘 빼지만 유기물·미생물·입자는 거의 걸러 내지 못하고, 오히려 수지 속에서 미생물이 자랄 수 있다는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두 방식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역할 분담입니다. 보통 RO로 대량을 걸러 낸 뒤 이온교환(또는 전기의 힘으로 수지를 연속 재생하는 EDI)으로 마무리해 고순도로 다듬습니다. RO가 앞에서 불순물을 걷어 주면 뒤의 수지 부하가 줄어 재생 주기가 길어지는, 서로 돕는 구성입니다.
요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공장에서는 이 마무리를 재생식 수지탑 대신 EDI로 하는 RO+EDI 조합을 많이 씁니다.

전통적인 이온교환 수지탑은 소진되면 산·알칼리로 재생해야 하는데, 이게 약품 취급의 안전 문제이고 폐액이 나오며 재생하는 동안 라인을 세워야 합니다. EDI는 전기의 힘으로 수지를 쉬지 않고 연속 재생하므로 이 약품과 재생 정지가 사라져, 사람 손이 덜 가고 순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며 24시간 돌리기 좋습니다. 그래서 신설·중대형 라인은 RO+EDI로 가는 추세가 뚜렷합니다. 다만 EDI는 들어오는 물이 이미 상당히 깨끗해야(경도가 낮아야) 제 성능을 내고 경도가 들어오면 스케일로 망가지므로, 반드시 앞에 RO를 두어 그 투과수를 받아 쓰도록 설계합니다. 즉 EDI는 RO 없이 단독으로 쓰지 못합니다. 반대로 규모가 작거나 초기 투자가 부담스러운 공장은 여전히 RO + 재생식·카트리지식 이온교환 수지 구성을 많이 씁니다. 화장품 정제수는 반도체용 초순수만큼의 극한 순도까지는 대개 필요 없으므로, 공장 규모와 투자 여력에 맞춰 RO 단독, RO+이온교환 수지, RO+EDI 가운데 고르면 됩니다.두 방식의 구성과 차이를 아래 표로 정리합니다.
| 비교 항목 | 역삼투(RO) | 이온교환수지 |
|---|---|---|
| 걸러 내는 힘 | 반투막에 고압(물리적 분리) | 이온 교환(화학적 치환) |
| 주 제거 대상 | 이온·유기물·미생물·입자 대부분 | 녹은 이온만(유기물·미생물은 거의 못 뺌) |
| 구성 | 전처리 필터, 고압펌프, RO 막 모듈, 투과수·농축수 배관 | 양이온탑·음이온탑(2탑식) 또는 혼상, 재생 설비 |
| 도달 순도 | 낮은 전도도(단독으로는 한계) | 아주 높은 순도(초순수까지) |
| 소모·유지 | 막 세정·교체, 전처리 필요 | 수지 재생(산·알칼리)·교체 |
| 물 손실 | 농축수로 일부 버림 | 재생 시 폐액 발생 |
| 미생물 | 상당 부분 제거 | 오히려 수지에 서식 위험 |
| 역할 | 1차 대량 제거(주력) | 마무리 고순도화(폴리싱) |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정제수는 “만드는 것”보다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RO·이온교환으로 갓 만든 물은 깨끗하지만, 이 물은 이온이 거의 없어 오히려 불안정하고, 무엇보다 방부제가 전혀 없는 맹물입니다. 그래서 저장하고 배관으로 보내는 동안 조금만 방심하면 순식간에 미생물이 자랍니다. 정제수 사고의 대부분은 제조 설비가 아니라 저장·분배 단계에서 납니다. 다음 절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20.3 저장·분배(순환 루프)의 위생 — 고이면 썩는다
갓 만든 정제수는 저장탱크에 모았다가 배관을 통해 각 사용점(배합실·세척)으로 보냅니다. 이 저장·분배 구간이 정제수 위생의 승부처입니다. 원칙은 하나로 요약됩니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그러니 고이지 않게 한다.
핵심은 순환입니다. 정제수 배관은 물을 사용점까지 보냈다가 쓰지 않은 물을 다시 저장탱크로 되돌리는 순환 루프로 만듭니다. 물이 배관 안에서 계속 흐르고 돌면 미생물이 자리 잡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물이 어딘가에 고여 흐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막(바이오필름)이 생깁니다. 서두의 제 사고가 바로 이 경우, 순환이 안 되던 막다른 구간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배관 설계에서 데드레그(막다른 구간, 물이 고이는 죽은 공간)를 없애는 것이 절대 원칙입니다. 사용점 밸브에서 본 배관까지의 거리가 길면 그 구간에 물이 고이므로, 이 거리를 짧게(관 지름의 몇 배 이내로) 설계합니다. 쓰지 않는 밸브나 막힌 지관도 데드레그가 되니 없앱니다. 저는 정제수 배관 도면을 볼 때 데드레그부터 찾습니다. 도면에는 안 보이던 막다른 구간이 현장에는 꼭 있습니다.

순환 구조를 조금 더 풀어 설명하겠습니다. 정제수 배관은 저장탱크에서 나가 사용점들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저장탱크로 돌아오는 고리(루프) 모양으로 만들고, 이 고리를 생산하지 않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돌립니다. 물이 늘, 그것도 벽을 훑을 만큼 충분한 유속으로 흐르면 미생물이 벽에 달라붙어 막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유속이 느리거나 멈추면 그 자리가 바로 온상이 됩니다. 그래서 순환 펌프로 일정 유속 이상을 유지하고, 밤이나 주말에도 순환을 멈추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용점은 본 배관(메인 루프)에서 짧게 따내되, 그 따낸 지관의 길이를 관 지름의 여섯 배 이내로 잡는 것을 원칙으로 둡니다. 현장에서 흔히 “6D 룰”이라 부르는데, 지관이 그보다 길면 그 끝에 물이 고여 데드레그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 배관은 물이 완전히 빠지도록 경사를 주어, 세척·소독 뒤 어디에도 물이 고이지 않게 합니다. 쓰지 않는 밸브, 막아 둔 가지, 임시로 달아 둔 배관은 모두 잠재적 데드레그이니 아예 없애거나 막힌 끝을 짧게 정리합니다. 정리하면 “늘 흐르게, 고이는 끝을 만들지 않게, 물이 완전히 빠지게”가 순환 배관 설계의 삼원칙입니다.
순환과 함께 소독·살균을 병행합니다. 배관에 자외선(UV) 살균기를 달아 지나가는 물의 미생물을 죽이고, 사용점 앞에는 미세 필터(예: 0.2마이크로미터)를 두어 미생물을 거릅니다. 주기적으로는 뜨거운 물이나 스팀으로 배관 전체를 소독(열소독)하거나, 허용된 화학 소독을 합니다. 저장탱크도 밀폐하고, 공기가 드나드는 통기구에는 필터를 달아 외부 미생물·먼지가 들어오지 않게 합니다. 탱크 안에 물방울이 맺히는 윗부분도 미생물이 좋아하는 자리라, 스프레이 볼로 탱크 내벽을 씻어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소독·여과 장치들은 소모품을 제때 갈아 주어야 제 역할을 합니다. 필터가 막힌 채, UV 램프가 수명이 다한 채로 돌리면 겉보기엔 물이 나와도 실제로는 걸러지지도 살균되지도 않고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UV 램프는 불이 들어와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자외선 세기가 크게 떨어집니다. 그래서 불빛만 보고 “아직 켜져 있으니 괜찮다”고 하면 안 되고, 정해진 수명 시간이 되면 교체해야 합니다. 설비 제조사(업체)가 권장하는 교체 주기를 기준으로, 실제 수질·차압(필터 앞뒤 압력차)·누적 가동시간을 함께 보고 관리합니다. 대표적인 소모품의 권장 교체·관리 주기를 정리합니다. 아래 주기는 일반적인 권장 예시이며, 실제 주기는 원수 수질·가동시간·차압에 따라 달라지므로 반드시 설비 매뉴얼과 현장 데이터를 따릅니다.
| 소모품 | 권장 교체·관리 주기(예시) | 관리 포인트 |
|---|---|---|
| 침전(세디먼트) 전처리 필터 | 약 1~3개월 또는 차압 상승 시 | 막히면 뒤 설비 부하가 커짐 |
| 활성탄 필터 | 약 6~12개월 | 염소·유기물 흡착능이 소진됨 |
| 연수(연화) 수지 | 소진 시 재생, 수년 주기 교체 | 경도 누출을 감시 |
| RO 막 | 약 2~3년(전처리 양호 시 더 길게) | 투과수량·전도도·차압으로 판단 |
| 이온교환 수지 | 소진 시 재생, 수년 주기 교체 | 비저항이 떨어지면 교체·재생 |
| UV 램프 | 약 9,000시간(24시간 가동 시 약 1년) | 불빛이 아니라 수명시간으로 교체 |
| UV 석영관(슬리브) | 주기적 세정, 약 2~5년 교체 | 스케일이 끼면 자외선 투과가 떨어짐 |
| 최종 0.2µm 필터 | 약 6~12개월 또는 차압·완전성 기준 | 미생물 최종 차단, 손상 시 교체 |
이 교체 주기를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소모품마다 교체 이력을 기록하고 다음 교체 예정일을 미리 잡아 두는 것입니다. 저는 정제수실 벽에 소모품별 교체 일정표를 붙여 두고, 교체할 때마다 날짜와 담당자를 적게 합니다. “언젠가 갈아야지” 하고 미루면 반드시 지나칩니다.
정제수는 만들어 놓고 오래 쓰는 물이 아닙니다. 사용 전 물이라도 정해진 주기로 수질을 확인하고, 문제가 있으면 쓰지 않습니다. 저는 “어제 받아 둔 정제수”를 아무 확인 없이 오늘 쓰는 것을 경계합니다. 하룻밤 사이에도 균은 자랍니다.
20.4 수질 관리 지표와 기준
정제수가 깨끗한지는 눈으로 알 수 없으니 지표로 관리합니다. 대표적인 것을 정리합니다. 기준값은 공장·용도·규정에 따라 다르므로, 여기서는 무엇을 보는지와 왜 보는지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 지표 | 무엇을 보나 | 의미 |
|---|---|---|
| 전도도 / 비저항 | 물에 녹은 이온의 양 | 낮은 전도도(높은 비저항)=이온이 적고 순수함 |
| 미생물(생균수) | 물 1mL당 자라는 균 수 | 위생의 핵심. 방부제 없는 물이라 특히 중요 |
| 총유기탄소(TOC) | 물에 녹은 유기물의 양 | 유기 오염·미생물 영양분 지표 |
| pH | 물의 산·알칼리 | 안정성·적합성 확인 |
| 경도 | 칼슘·마그네슘 잔량 | 연수·RO가 제대로 되는지 |
| 외관·냄새 | 탁도·이취 | 육안 1차 확인 |
이 중에서 스킨케어 생산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미생물입니다. 전도도가 조금 높은 것은 제형에 따라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미생물은 곧바로 완제품 오염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미생물은 정해진 주기로(사용점별로) 검사하고, 추세를 봅니다. 어느 사용점에서 균이 조금씩 늘기 시작하면, 기준을 넘기 전에 그 구간을 소독하고 원인을 찾습니다. 전도도·비저항은 온라인 계기로 실시간 감시하는 경우가 많아, 값이 튀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설비 계기에 뜨는 전기저항 값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물에 이온이 적을수록 전기가 잘 안 통하므로, 물의 순도는 “전기가 얼마나 안 통하는가”로 잽니다. 이것을 두 가지로 표현하는데, 전기가 통하는 정도인 전도도(단위 µS/cm, 마이크로지멘스)와 그 반대인 비저항(단위 MΩ·cm, 메가옴)입니다. 둘은 서로 역수 관계라, 전도도가 낮을수록 비저항은 높아집니다. 이온이 거의 없는 초순수는 비저항이 이론상 최고치인 약 18.2MΩ·cm(전도도로는 약 0.055µS/cm)에 이릅니다. 한마디로 “비저항이 높다 = 전도도가 낮다 = 이온이 적어 순수하다”입니다. 한 가지 꼭 알아 둘 점은, 전도도·비저항은 온도에 따라 값이 변하므로 계기는 보통 25도 기준으로 보정한 값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온도 보정을 끄거나 틀리면 실제 순도와 다른 값을 읽게 됩니다. 그래서 정제수 라인에는 순환 배관과 주요 사용점에 온라인 전도도·비저항 계기를 달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값이 기준을 벗어나면 즉시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렇다면 화장품 정제수(이온수)는 어느 수준으로 관리해야 할까요. 화장품은 정제수 수질을 법으로 단일하게 못 박아 둔 값이 있는 것은 아니고, 각 공장이 내부 규격으로 정해 운영합니다. 다만 제약용 정제수(USP 등)의 기준을 실무 가이드라인으로 널리 참고하므로, 이를 기준 삼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서 알럿(경보) 한계는 “추세가 나빠지고 있으니 미리 손쓰라”는 선이고, 액션(조치) 한계는 “넘으면 사용을 멈추고 원인을 잡으라”는 선입니다.
| 항목 | 흔히 참고하는 기준(가이드라인) | 비고 |
|---|---|---|
| 전도도 | 25도에서 약 1.3µS/cm 이하 | 비저항으로는 대략 0.77MΩ·cm 이상 |
| 총유기탄소(TOC) | 약 500ppb(µg/L) 이하 | 유기 오염·미생물 영양분 지표 |
| 미생물(생균수) | 액션 100CFU/mL 이하(알럿 50CFU/mL) | 가장 중요. 사내 규격은 더 엄격히 잡기도 함 |
| pH | 약 5~7(참고) | 제형·규격에 따라 다름 |
| 외관·냄새 | 무색·무취·이물 없음 | 육안 1차 확인 |
위 값은 제약용 정제수를 기준으로 한 일반 가이드라인입니다. 화장품은 제품·공정·규정에 맞춰 사내 규격을 정하되, 특히 미생물은 수계 제형 특성상 보수적으로(엄격하게) 잡는 것이 안전합니다. 저는 전도도 같은 이화학 값보다 미생물 추세를 더 눈여겨봅니다. 전도도는 조금 높아도 당장 제품을 망치지 않지만, 미생물은 한 번 기준을 넘으면 그 물로 만든 배치가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측정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미생물 검사는 시료를 받는 순간부터 오염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사용점 밸브를 소독하고, 충분히 흘려보낸 뒤, 깨끗한 용기에 받습니다. 시료 받는 방법이 틀리면, 물은 깨끗한데 검사만 오염으로 나와 애먼 곳을 뒤지게 됩니다.
20.5 왜 세척하는가 — 오염의 종류와 교차오염
이제 설비 세척으로 넘어갑니다. 유화기·배관·충전기에는 생산이 끝나면 제품이 남습니다. 이 잔류물을 제대로 씻지 않으면 세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 남은 제품에서 미생물이 자라 다음 배치를 오염시킵니다. 둘째, 이전 제품이 다음 제품에 섞이는 교차오염이 생깁니다. 향이 강한 제품 다음에 무향 제품을 만들면 향이 옮고, 색이 있는 제품 다음에 투명 제품을 만들면 색이 옮습니다. 셋째, 굳거나 눌어붙은 잔류물이 떨어져 이물이 됩니다.
특히 교차오염은 품질만이 아니라 안전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그 성분이 없다고 표시된 제품에서 이전 제품의 잔류물을 접하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같은 설비로 여러 제품을 만드는 공장일수록 세척이 중요합니다. 세척은 “다음 제품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이전 제품의 흔적을 지우는 안전 절차”입니다.
세척 방식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두 가지입니다. 설비를 분해하지 않고 세척액을 순환시켜 씻는 정치세척(CIP)과, 부품을 분해해 직접 씻는 분해세척(COP)입니다. 큰 탱크·배관은 CIP로, 분해가 쉬운 부품·소도구는 COP로 씻는 식으로 병행합니다.
20.6 세척(CIP·COP)의 원리와 실제
세척이 잘 되려면 네 가지가 맞아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후배들에게 “세척의 네 박자”라고 가르칩니다. 시간, 온도, 물리력, 세제입니다. 이 넷은 서로 주고받는 관계라, 하나가 약하면 다른 것으로 보완합니다. 예를 들어 물리력(문지르는 힘)을 세게 주면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온도를 높이면 세제 양을 줄일 수 있습니다.
시간은 세척액이 잔류물에 작용하는 시간입니다. 충분히 오래 돌려야 녹고 떨어집니다. 온도는 대체로 따뜻할수록 잘 씻깁니다. 특히 유상·왁스가 많은 제품은 찬물로는 안 씻기고 따뜻한 물이라야 녹아 나옵니다. 클렌징밤·페이스오일 같은 무수·고유상 제품을 만든 설비는 데운 물로 씻어야 합니다. 물리력은 문지르고 때리는 힘입니다. CIP에서는 스프레이 볼이 세척액을 탱크 벽에 세게 뿌려 물리력을 주고, 배관에서는 빠른 유속으로 훑어 냅니다. 세제는 잔류물의 성질에 맞게 고릅니다. 기름때에는 알칼리 세제, 무기·스케일 같은 것에는 산성 세제가 잘 듣습니다.
실제 세척 절차는 대체로 이 순서를 따릅니다. 먼저 남은 제품을 최대한 회수·배출하고(예비 세척 전에 제품을 빼낼수록 세척이 쉬움), 물로 애벌 헹굼을 해 큰 잔류를 흘려보냅니다. 그다음 세제 세척으로 눌어붙은 것을 녹여 떼어 내고, 충분히 헹굽니다. 마지막 헹굼은 반드시 정제수로 합니다. 마지막을 수돗물로 헹구면 그 물의 불순물·미생물이 다시 남기 때문입니다. 필요하면 헹굼 뒤 소독(열·화학)까지 합니다. 그리고 무수 제품 라인이나 다음이 무수 제품이면, 헹굼물이 남지 않게 완전히 말리거나 제품으로 초기 밀어내기를 합니다. 물 한 방울이 무수 제품을 뿌옇게 만드니까요.
세척에서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은 “안 보이는 곳이 문제”라는 겁니다. 탱크 벽처럼 잘 보이고 스프레이 볼이 직접 닿는 곳은 웬만하면 씻깁니다. 문제는 밸브 안쪽, 배관 이음매, 펌프 내부, 호모믹서 헤드 속, 패킹 밑처럼 세척액이 잘 닿지 않는 구석입니다. 오염과 미생물은 늘 이런 사각지대에 남습니다. 그래서 설비를 고를 때부터 세척이 쉬운 위생 설계를 택하고, 사각지대는 주기적으로 분해해 직접 확인·세척합니다.
20.7 세척 밸리데이션 — 씻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세척을 했다는 것과, 세척이 충분히 되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늘 하던 대로 씻었으니 됐겠지”는 증명이 아닙니다. 세척 밸리데이션은 정해진 방법으로 씻으면 잔류물이 기준 이하로 확실히 제거된다는 것을 데이터로 증명하고, 그 방법을 표준으로 고정하는 일입니다.
세척이 잘 됐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를 함께 씁니다. 가장 기본은 육안 검사입니다. 씻은 뒤 설비 안을 밝은 빛으로 비춰 잔류물·물때·이물이 없는지 봅니다. 육안으로 보이는 잔류가 있으면 그건 볼 것도 없이 불합격입니다. 다만 육안으로 안 보인다고 깨끗한 건 아니므로 추가 확인을 합니다.
그다음이 헹굼수(린스수) 검사입니다. 마지막 헹굼에 쓴 물을 받아 전도도, TOC, pH를 재고, 처음 넣은 깨끗한 정제수와 비교합니다. 헹굼물이 처음 물만큼 깨끗해졌으면 잔류물이 그만큼 씻겨 나갔다는 뜻입니다. 향이 강한 제품은 헹굼물의 냄새로도 확인합니다.
더 확실한 것은 표면 채취(스왑) 검사입니다. 씻은 설비 표면의 정해진 면적을 면봉으로 문질러, 거기 묻어 나온 잔류물의 양과 미생물을 측정합니다. 특히 앞서 말한 사각지대, 세척이 어려운 지점을 집중해서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최악 조건(워스트 케이스)입니다. 가장 씻기 어려운 제품, 가장 씻기 어려운 설비 지점, 가장 오래 방치된 조건을 잡아 그 조건에서도 합격하면, 그보다 쉬운 조건은 당연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모든 경우를 다 검사할 수 없으니 가장 어려운 경우로 대표시키는 겁니다.
판정에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육안으로 잔류가 없을 것, 헹굼수의 지표가 정해진 값 이하일 것, 표면 잔류와 미생물이 기준 이하일 것을 미리 정해 두고, 그 기준을 넘으면 불합격으로 다시 세척합니다. 그리고 한 번 밸리데이션으로 확정한 세척 방법(세제·농도·온도·시간·헹굼)은 함부로 바꾸지 않습니다. 조건을 바꾸면 다시 검증해야 합니다. 저는 “검증된 방법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세척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작업자마다 제 방식대로 대충 씻으면, 어떤 날은 되고 어떤 날은 안 되는 들쭉날쭉한 세척이 됩니다.
세척 기록도 반드시 남깁니다. 언제, 무슨 설비를, 어떤 방법으로 씻고, 누가 확인했는지를 적습니다. 다음 제품을 만들기 전에 이 설비가 깨끗하다는 것을 기록으로 보증하는 겁니다. 세척 상태 라벨(세척 완료·사용 가능)을 설비에 붙여, 씻은 설비와 안 씻은 설비가 헷갈리지 않게 합니다. 이건 앞에서 이야기한 라벨 규율과 같은 정신입니다.
20.8 현장 트러블슈팅과 주의점
정제수와 세척에서 자주 만나는 문제를 정리합니다. 아래 조치는 일반 원칙이며, 실제 대응은 각 공장의 기준과 밸리데이션 결과를 따릅니다.
| 증상 | 흔한 원인 | 조치·예방 |
|---|---|---|
| 정제수 미생물 초과 | 데드레그·정체, 순환 불량, 소독 미흡 | 데드레그 제거, 순환 유지, UV·필터·열소독, 사용점 추세 관리 |
| 특정 사용점만 균 높음 | 그 사용점 밸브·지관 오염, 긴 지관 | 해당 구간 소독·분해 점검, 지관 길이 단축 |
| 전도도·비저항 갑자기 나빠짐 | RO막·이온교환 수지 성능 저하 | 막·수지 상태 점검·교체, 전처리 확인 |
| 무수 제품 초두품 뿌옇게 나옴 | 세척 후 잔수, 마지막 헹굼·건조 미흡 | 완전 건조·제품 퍼징, 무수 라인 물 관리 |
| 다음 제품에 이전 향·색 옮음 | 세척 부족, 사각지대 잔류 | 세척 4박자 점검, 사각지대 분해 세척, 전환 강화 |
| 세척했는데 미생물 잔존 | 헹굼을 수돗물로, 소독 누락, 사각지대 | 마지막 헹굼 정제수, 소독 추가, 스왑으로 사각지대 확인 |
| 헹굼수 지표가 기준 초과 | 세제 잔류, 헹굼 부족 | 헹굼 시간·횟수 늘림, 세제 농도 재검토 |
| 세척 결과가 배치마다 다름 | 작업자별 임의 방식 | 검증된 방법 표준화·준수, 기록·라벨 |
| 정제수 배관 붉은 물·녹 | 배관 재질·부식, 스케일 | 위생 재질(스테인리스) 점검, 배관 관리 |
경험담을 몇 개 얹겠습니다. 첫째, 여름철에 정제수 사고가 몰립니다. 온도가 높으면 미생물이 훨씬 빨리 자라기 때문입니다. 겨울에 괜찮던 배관이 여름이면 균이 터집니다. 그래서 저는 여름이 오기 전에 정제수 시스템을 한 번 대청소·소독하고, 여름 동안은 미생물 검사 주기를 더 촘촘히 잡습니다.
둘째, “주말 뒤 월요일”을 조심합니다. 주말 동안 설비를 안 돌리고 물이 고여 있으면, 월요일 아침 첫 물에 균이 많습니다. 그래서 가동 전에 정제수를 충분히 흘려보내고(플러싱) 수질을 확인한 뒤 씁니다. 금요일에 세척을 끝냈어도 월요일에 한 번 더 확인하는 게 안전합니다.
셋째, 세척을 서두르다 사고가 납니다. 생산 일정이 밀리면 세척을 대충 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데, 그렇게 아낀 30분이 다음 배치 오염으로 돌아와 그 배치를 통째로 버리게 만듭니다. 저는 “세척은 생산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씻는 시간을 생산 시간에서 빼지 말고, 생산 계획에 처음부터 넣어 두라는 뜻입니다.
20.9 정리하며
정제수는 스킨케어의 보이지 않는 주원료이고, 방부제 없는 맹물이라 만드는 것보다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전처리·RO·이온교환으로 불순물을 걷어 내 순수를 만들고, 순환 루프와 데드레그 제거, UV·필터·소독으로 저장·분배 중의 재오염을 막으며, 전도도와 미생물 같은 지표로 그 상태를 확인합니다. 설비 세척은 시간·온도·물리력·세제의 네 박자로 하되 사각지대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은 정제수로 헹굽니다. 그리고 세척했다는 것과 세척이 충분했다는 것은 다르므로, 육안·헹굼수·표면 채취와 최악 조건으로 세척이 충분함을 증명하고, 검증된 방법을 표준으로 고정해 기록과 라벨로 보증합니다. 물과 세척을 지키는 것은 눈에 잘 안 띄는 일이지만, 수계 제형이 많은 스킨케어에서는 이것이 곧 미생물 사고를 막는 일이고, 미생물 사고는 한 번에 브랜드를 흔듭니다.
다음으로는 유화가 끝난 반제품을 어떻게 식히고 옮기고 재우는지, 냉각과 이송, 반제품 숙성(에이징) 관리를 다루겠습니다. 냉각 속도가 제형을 좌우하고, 반제품을 얼마나 어떻게 재우느냐가 최종 점도와 안정성을 바꾸는 이야기를 이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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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기관: 식품의약품안전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