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장. 공정 관리와 내용물(벌크) 검사 — 만들면서 확인하고, 넘기기 전에 판정한다

이 글의 주제: 화장품 공장의 공정 관리와 내용물(벌크) 검사. 제조지시서와 제조기록서, 공정 중 관리 포인트, 투입 이중 확인, 내용물 검사 항목과 시료 채취, 표준 견본 비교, 일탈과 부적합 내용물 처리까지 공정 관리의 흐름을 정리했습니다.

제조실 탱크 안에서 크림이 완성되는 순간, 작업자는 대개 안도한다. 계획대로 투입했고, 온도도 맞췄고, 냉각까지 끝냈으니 이제 충전실로 넘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26년 동안 공장에서 일하며 배운 것은, 탱크 안의 내용물은 검사로 확인하기 전까지 아직 ‘제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겉보기에 멀쩡한 내용물(벌크)이 pH가 틀어져 있거나, 방부제 하나가 빠져 있거나, 점도가 규격 밖에 있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내용물 단계에서 잡은 문제는 조정하거나 다시 만들면 된다. 그런데 충전을 마친 뒤에 발견하면 용기와 단상자와 인건비까지 함께 버려야 하고, 출하한 뒤에 발견하면 회수가 된다. 같은 불량이라도 어느 단계에서 잡느냐에 따라 비용이 몇 배, 몇십 배로 달라진다. 이 장에서는 제조하는 동안 공정을 어떻게 관리하고, 내용물을 충전실로 넘기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판정하는지를 공장 입장에서 정리한다.

25.1 공정 관리란 무엇인가 — 만들면서 확인한다

공정 관리는 다 만든 뒤에 검사로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 자체를 정해진 조건 안에 묶어 두는 일이다. 검사는 결과를 보는 것이고, 공정 관리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원인을 관리하는 것이다. 화장품은 한 번 유화가 잘못되면 검사로 발견해도 되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과정에서 지켜야 한다.

신입 때 나는 내용물 검사만 통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같은 처방의 로션이 어떤 배치는 6개월 뒤 분리되고 어떤 배치는 멀쩡한 일을 겪었다. 내용물 검사 결과는 두 배치 모두 적합이었다. 기록을 하나하나 대조해 보니, 분리된 배치는 유화 온도가 규정보다 낮았고 호모믹서 시간도 짧았다. 검사 항목인 pH와 점도에는 그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유화 입자 상태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내용물 검사는 공정 관리의 마지막 확인일 뿐, 공정 관리를 대신하지 못한다.

구분공정 관리내용물 검사
목적정해진 조건으로 만들게 한다만들어진 결과가 규격에 맞는지 본다
시점칭량부터 냉각·이송까지 제조 내내제조 완료 후 충전 이관 전
주체제조 작업자, 제조 책임자품질 부서(시료 채취는 제조와 협업)
대상온도·시간·rpm·진공·투입 순서·투입량성상·pH·점도·비중·미생물 등
놓쳤을 때검사로 잡히지 않는 잠재 불량이 남는다불량 내용물이 충전·출하된다

둘은 서로를 대신하지 않는다. 공정을 잘 지켰어도 원료 이상이나 투입 실수는 검사로 잡아야 하고, 검사를 통과했어도 공정 기록이 틀어져 있으면 그 배치는 다시 봐야 한다.

25.2 제조지시서와 제조기록서 — 지시대로 하고, 한 대로 적는다

공정 관리의 출발점은 문서다. 제조지시서는 이번 배치를 어떻게 만들지 정한 지시이고, 제조기록서는 실제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남기는 기록이다. 많은 공장이 두 가지를 한 장의 양식으로 합쳐 쓴다. 지시 칸 옆에 실측 칸을 두는 방식인데, 나는 이 방식을 선호한다. 작업자가 지시와 실제를 나란히 보면서 차이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지시서에는 최소한 다음이 들어가야 한다.

항목내용현장 포인트
제품 정보제품명, 제품코드, 처방 번호(버전)처방 버전이 최신인지 발행 시 확인
배치 정보제조번호, 배치 크기, 제조일, 사용 설비설비 번호까지 지정해야 추적이 된다
원료 목록원료코드, 원료명, 투입량, 입고번호(로트)칭량 시 로트를 실제로 적게 한다
공정 단계단계별 투입 순서, 온도, rpm, 시간, 진공범위로 적는다(예: 75~80℃)
확인 포인트이중 확인 서명 칸, 공정 중 확인 항목어디서 멈추고 확인할지 표시
내용물 규격검사 항목과 기준작업자도 기준을 알게 한다
서명작업자, 확인자, 제조 책임자단계마다 그 자리에서 서명

기록서 작성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한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이, 실측값을 적는다’는 것이다. 작업이 다 끝난 뒤 몰아서 적으면 기억으로 쓰게 되고, 기억으로 쓴 숫자는 대개 지시서의 숫자와 똑같아진다. 나는 기록서에 지시값과 정확히 같은 숫자만 줄줄이 적혀 있으면 오히려 의심한다. 실제 공정에서는 온도가 77.3℃였다가 78.1℃가 되고, 시간도 10분이 아니라 11분이 되기 마련이다. 살아 있는 기록은 조금씩 흔들린다.

틀리게 적었을 때는 지우거나 덧쓰지 않는다. 한 줄을 긋고 옆에 바른 값을 적은 뒤, 수정한 사람과 날짜, 필요하면 사유를 남긴다. 수정액이나 지우개를 쓰는 순간 그 기록은 신뢰를 잃는다.

25.3 공정 중 관리 포인트 — 어디서 무엇을 재는가

모든 순간을 다 잴 수는 없다. 그래서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지점을 골라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나는 이 지점을 ‘반드시 멈추고 확인하는 자리’라고 작업자에게 설명한다. 스킨케어 유화 제품을 기준으로 보면 대표적인 관리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공정 단계관리 항목관리 예시벗어났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
칭량원료·투입량·로트이중 확인, 저울 일일 점검함량 이상, 투입 누락
수상 용해온도, 분산 상태75~80℃, 폴리머 완전 분산 확인피쉬아이(덩어리), 점도 미달
유상 용해온도, 완전 용해75~80℃, 왁스류 완전 용해 확인결정 석출, 거친 입자
유화투입 속도, 호모 rpm·시간, 온도유상 투입 3~5분, 호모 3,000~3,500rpm 5~10분입자 굵어짐, 분리
진공 탈포진공도, 시간-0.06~-0.08MPa 유지기포 혼입, 비중 저하
냉각냉각 속도, 패들 rpm분당 1℃ 내외, 저속 교반점도 이상, 결정화
후첨 투입투입 온도향·열에 약한 성분 40℃ 이하향 변질, 활성 성분 분해
완료최종 온도, 외관30~35℃ 이하에서 배출충전 후 수축·결로

위의 숫자는 예시이며 실제 조건은 처방과 설비에 따라 작업표준서에서 정한다. 중요한 것은 각 포인트마다 기준값과 허용 범위가 문서에 있어야 하고, 작업자가 그 범위를 벗어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요즘 진공유화기는 온도와 rpm, 진공도를 자동으로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 기록이 있으면 편하지만 그것만 믿으면 안 된다. 센서가 틀어져 있으면 기록도 틀어진다. 나는 온도계 센서를 정기적으로 표준 온도계와 비교 점검하게 했고, 중요한 단계에서는 작업자가 화면 값을 직접 읽어 기록서에 적게 했다. 사람이 숫자를 한 번 읽는 행동만으로도 이상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꽤 많다.

25.4 투입 확인과 이중 확인 — 원료가 빠지지 않게

내용물 불량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이 원료 투입 누락과 이중 투입이다. 방부제가 빠지면 미생물 사고로 이어지고, 기능성 성분이 빠지면 함량 부적합이 된다. 그런데 이런 실수는 내용물 검사에서 바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방부제 하나가 빠져도 외관과 pH와 점도는 멀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입은 반드시 확인 구조를 가져야 한다. 우리 공장에서 운영해 온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칭량 단계: 칭량자가 원료를 계량하고, 확인자가 원료명·원료코드·로트·중량을 확인한 뒤 서명한다. 계량한 원료 용기에는 제품명, 제조번호, 원료명, 중량을 적은 라벨을 바로 붙인다.
  2. 반입 단계: 칭량한 원료를 단계별(수상·유상·후첨)로 구분한 바구니나 대차에 담아 제조실로 옮긴다. 단계가 다른 원료를 섞어 담지 않는다.
  3. 투입 단계: 투입할 때마다 원료 라벨을 읽고 제조기록서의 해당 줄에 체크한 뒤 서명한다. 중요 원료(방부제, 기능성 성분, 향, 소량 첨가제)는 확인자가 옆에서 보고 함께 서명한다.
  4. 잔량 확인: 단계가 끝나면 그 단계에 쓸 원료 용기가 모두 비었는지 확인한다. 남은 용기가 있으면 투입 누락이다.
  5. 빈 용기 확인: 배치가 끝나면 빈 칭량 용기의 개수가 원료 목록의 개수와 맞는지 대조한 뒤 정리한다.

이 가운데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단계가 실제로 사고를 막는 핵심이다. 사람은 체크 칸에 습관적으로 표시할 수 있지만, 바구니에 남아 있는 원료 용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칭량된 소량 원료가 투입되지 않은 채 바구니 구석에 남아 있는 것을 배치 종료 확인에서 찾아낸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때마다 그 확인 절차가 회수 한 건을 막았다고 생각했다.

소량 원료는 따로 신경 써야 한다. 0.1% 이하로 들어가는 원료는 칭량 용기가 작아서 다른 용기 사이에 묻히기 쉽다. 소량 원료는 눈에 띄는 색의 용기나 별도 트레이를 쓰고, 정제수나 다가알코올 같은 다른 원료에 미리 녹여 투입하는 공정이라면 그 녹이는 과정도 기록서에 한 줄로 넣어야 한다.

25.5 내용물(벌크) 검사 항목 — 무엇을 보고 무엇으로 판정하는가

내용물 검사는 충전으로 넘기기 전에 이 배치가 설계한 그 제품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항목은 제형마다 다르지만, 기초 스킨케어 제품에서 기본으로 보는 항목은 다음과 같다.

검사 항목확인 내용판정 방법 예시현장 포인트
성상(외관)색, 광택, 결, 균일성표준 견본과 비교같은 조명, 같은 용기에서 비교
향향의 종류와 강도표준 견본과 비교 시향냄새 피로 주의, 여러 사람이 확인
pH산도규격 범위(예: 5.5~6.5)측정 온도 통일, 전극 교정
점도점성규격 범위(예: 8,000~12,000cps)측정 온도·스핀들·rpm·시간 고정
비중기포 혼입·조성 확인규격 범위비중 저하는 기포 의심
현미경 관찰유화 입자 크기·균일성, 결정표준 사진과 비교굵은 입자·결정은 분리 전조
원심분리강제 분리 여부예: 3,000rpm 30분 후 분리 없음빠른 안정성 선별
미생물총호기성생균수, 특정 병원균기준 이하결과까지 시간이 걸림
함량기능성 성분 함량규격 범위해당 제품만, 시험 기간 고려

점도와 pH는 측정 조건이 조금만 달라도 숫자가 크게 달라진다. 점도는 같은 시료라도 25℃에서 잰 값과 30℃에서 잰 값이 다르고, 스핀들과 회전수와 측정 시간이 바뀌면 전혀 다른 숫자가 나온다. 그래서 규격서에는 기준값만 적을 것이 아니라 측정 조건을 함께 적어야 한다. “점도 8,000~12,000cps (25℃, 스핀들 4번, 12rpm, 1분)”처럼 써야 누가 재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갓 만든 내용물은 아직 안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유화 직후에는 점도가 낮다가 하루 이틀 사이에 올라가는 제품이 많고, 기포가 빠지면서 비중도 변한다. 그래서 내용물 규격을 정할 때는 ‘언제 측정한 값인가’를 함께 정해 둬야 한다. 제조 직후 기준과 숙성 후 기준을 따로 두는 공장도 있다. 숙성이 필요한 제품은 숙성을 마친 뒤 판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미생물 시험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며칠이 걸린다. 그래서 미생물 결과가 나오기 전에 충전을 진행할지는 공장의 정책으로 정해 둬야 한다. 결과 확인 후 충전하는 방식이 가장 안전하지만, 내용물 보관 기간이 길어지는 단점이 있다. 결과 대기 중 충전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그 완제품을 출하 보류 상태로 두고, 미생물 결과가 적합으로 나온 뒤에 출하를 허가하는 구조여야 한다.

25.6 시료 채취와 대표성 — 탱크 어디서 뜨는가

내용물 검사 결과는 시료가 배치 전체를 대표할 때만 의미가 있다. 탱크 위쪽 표면에서 한 국자 떠서 검사하면, 그 결과는 탱크 위쪽 표면에 대한 결과일 뿐이다.

채취 위치장점주의점
탱크 상부채취가 쉽다기포·분리된 오일층이 섞일 수 있다
하부 배출 밸브배출 시점의 실제 상태 확인밸브 안에 고여 있던 물질이 처음에 나온다
이송 중간(초·중·말)배치 전체의 균일성 확인채취 시점을 정확히 정해야 한다
저장 용기(이송 후)충전 직전 상태 확인용기별로 따로 채취해야 한다

내가 가장 신뢰하는 방식은 배출하거나 이송하는 동안 처음, 중간, 마지막에서 각각 채취하는 것이다. 세 시료의 외관과 점도와 pH가 비슷하면 배치가 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처음 시료만 다르다면 밸브나 배관에 고여 있던 물질이 섞였을 가능성이 높고, 마지막 시료만 다르다면 탱크 바닥에 무거운 성분이 가라앉았거나 교반이 닿지 않는 부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무기 자외선 차단제나 펄, 분말처럼 비중이 큰 성분이 들어간 제품은 균일성 확인이 필수다. 이런 성분은 교반을 멈추고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고, 시료 위치에 따라 함량이 크게 달라진다. 기능성 성분 함량 시험용 시료라면 대표성이 더 중요하다. 함량이 미달로 나왔는데 실은 시료를 상층에서만 떴기 때문이었다면, 공장은 엉뚱한 원인을 찾아 헤매게 된다.

채취 도구와 용기도 관리 대상이다. 세척하고 건조한 전용 도구를 쓰고, 시료 용기에는 제품명, 제조번호, 채취 위치, 채취 시각, 채취자를 적는다. 미생물 시험용 시료는 멸균된 용기와 도구로 별도로 채취한다. 시료를 뜨는 행위가 오염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25.7 표준 견본과 비교 판정 — 숫자로 못 재는 것을 판정하는 법

색과 향과 사용감은 숫자로 완전히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내용물 판정에서는 표준 견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표준 견본은 개발 단계에서 승인된 기준 샘플로, 이후 모든 생산 배치는 이것과 비교해 판정한다.

관리 항목운영 방법
견본 설정개발 확정 시 승인 샘플을 견본으로 지정, 승인자 서명
보관냉장·차광 보관, 견본 용기에 설정일 표시
갱신정해진 주기(예: 6개월~1년)마다 승인 배치로 교체
비교 조건같은 조명, 같은 용기, 같은 양, 같은 온도에서 나란히 비교
판정자지정된 판정자, 필요시 2인 이상

표준 견본도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1년 된 견본과 갓 만든 내용물을 비교하면, 견본이 변색되어 있어서 오히려 정상 배치가 다르게 보이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견본은 주기적으로 갱신해야 하고, 갱신할 때는 직전 견본과 새 견본을 비교해 차이가 없는지 확인한 뒤 교체한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계속 ‘가장 최근 배치’를 견본으로 바꿔 쓰면, 배치마다 조금씩 생긴 차이가 누적되어 1년 뒤에는 처음과 다른 제품이 된다. 나는 이걸 ‘견본이 흘러간다’고 표현한다.

향 비교는 특히 판정자의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향료 냄새를 하루 종일 맡는 작업자는 코가 둔해져 있다. 향 판정은 오전에 하고, 판정 전에 진한 냄새가 있는 곳을 피하며, 애매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다시 맡게 한다.

25.8 내용물(벌크) 판정과 보관·출고 — 판정이 끝나야 넘긴다

내용물 검사가 끝나면 품질 부서가 적합 또는 부적합을 판정하고, 적합 판정을 받은 내용물만 충전실로 넘어간다. 판정 전까지 내용물 저장 용기에는 ‘검사 중’ 라벨을, 판정 후에는 ‘적합’ 또는 ‘부적합’ 라벨을 붙인다. 원료 입고에서 쓰는 라벨 색 체계를 내용물에도 똑같이 쓰면 공장 전체가 같은 언어로 움직인다.

단계상태 표시확인 내용
제조 완료검사 중제품명, 제조번호, 제조일, 중량, 용기 번호
판정적합 / 부적합판정자, 판정일
보관적합보관 장소, 보관 기한, 보관 온도
충전 이관적합충전 지시와 제품명·제조번호 대조

내용물에도 보관 기한이 있어야 한다. 만든 지 오래된 내용물은 미생물 위험이 커지고, 점도와 향도 변할 수 있다. 제품 특성에 따라 내용물 보관 기한을 정하고, 기한을 넘긴 내용물은 재검사 후에만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재검사 없이 “아직 괜찮아 보인다”는 이유로 충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저장 용기는 밀폐하고, 뚜껑을 열 때마다 오염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 저장 용기에서 여러 번 나눠 충전하는 경우에는 개봉 횟수와 일시를 관리하고, 마지막 남은 소량은 표면이 마르거나 오염되기 쉬우니 특히 주의한다.

충전실로 이관할 때는 충전 지시서의 제품명과 제조번호를 내용물 라벨과 반드시 대조한다. 비슷한 색의 크림 두 가지가 같은 날 제조되면, 저장 용기가 뒤바뀌어 다른 제품 용기에 충전되는 사고가 실제로 일어난다. 이관 시 대조 서명은 귀찮아도 생략하면 안 된다.

25.9 일탈과 부적합 내용물(벌크) 처리 — 조정할 것인가, 다시 만들 것인가

공정 중에 정해진 조건을 벗어난 것을 일탈이라고 한다. 온도가 범위를 벗어났거나, 호모믹서가 중간에 멈췄거나, 투입 순서가 바뀌었거나, 정전으로 공정이 끊긴 경우가 모두 일탈이다. 일탈이 생기면 작업자는 숨기지 말고 즉시 제조 책임자에게 보고해야 하고, 그 내용은 기록서에 남겨야 한다. 일탈 자체보다 일탈을 숨기는 것이 훨씬 위험하다.

일탈 예시즉시 조치판정 방향
유화 온도가 범위보다 낮음보고, 기록, 가능하면 재가온현미경·원심분리·안정성 확인 후 판정
호모믹서 중간 정지원인 확인, 재가동 여부 판단입자 상태 확인, 필요시 재유화
투입 순서 바뀜보고, 기록개발 부서와 영향 평가
원료 투입량 오류즉시 중단, 보고보정 가능 여부 평가, 불가 시 폐기
정전·설비 고장으로 공정 중단안전 확보, 보고, 상태 기록중단 시점·시간에 따라 판정

내용물 검사에서 부적합이 나오면 조정할지, 재작업할지, 폐기할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 판단은 작업자나 생산 담당자가 혼자 내리면 안 되고, 품질 책임자가 원인을 확인한 뒤 결정해야 한다.

부적합 항목조정 가능한 경우폐기를 검토하는 경우
pH정해진 조정제로, 정해진 범위 안에서 조정조정량이 허용 한도를 넘는 경우, 원인 불명
점도(낮음)원인이 확인되고 처방상 허용된 방법이 있는 경우유화 불량에서 온 점도 저하
색·향승인된 범위 안의 미세 차이원료 오투입·변질이 원인인 경우
입자·분리 전조재유화로 회복이 검증된 제품재유화로 회복되지 않는 경우
미생물조정 대상 아님원칙적으로 폐기
투입 누락·오투입개발·품질이 보정 방법을 승인한 경우에 한해방부제·기능성 성분 관련, 원인 추적 불가

조정에는 원칙이 있다. 조정 방법과 허용 범위는 미리 작업표준서에 정해져 있어야 하고, 정해진 방법 외의 조정은 개발과 품질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조정한 내용은 무엇을 얼마나 넣었는지 기록서에 남기고, 조정 후에는 다시 검사해서 판정한다. 그리고 조정이 잦은 제품은 그 자체가 신호다. 매번 pH를 조정해야 한다면 처방이나 원료나 공정 어딘가에 근본 원인이 있다는 뜻이고, 조정으로 덮지 말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

미생물 부적합 내용물은 원칙적으로 살리려 하지 않는다. 방부제를 더 넣으면 숫자는 내려갈 수 있지만, 이미 자란 미생물이 만든 대사산물이나 내성균의 위험은 남는다. 그리고 그 배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염 경로를 찾는 일이다. 원료인지, 정제수인지, 설비인지, 작업자인지 찾아내지 못하면 다음 배치에서 또 같은 일이 생긴다.

25.10 현장 트러블슈팅과 주의점

공정 관리와 내용물 검사 단계에서 실제로 겪었거나 자주 보는 문제를 정리했다.

현상흔한 원인확인 방법예방·조치
내용물 검사는 적합인데 나중에 분리유화 조건 이탈, 검사 항목이 입자 상태를 못 봄기록서 공정 조건 대조, 현미경공정 기록 검토를 판정 조건에 포함, 현미경 관찰 추가
방부제·소량 원료 투입 누락체크 습관화, 소량 용기 묻힘잔량 용기 확인, 함량 분석단계별 잔량 확인, 소량 원료 별도 트레이
점도 측정값이 사람마다 다름측정 온도·스핀들·시간 불일치동일 시료 교차 측정측정 조건을 규격서에 명시
배치마다 점도 편차 큼냉각 속도·교반 조건 편차, 측정 시점 차이냉각 기록 비교냉각 조건 표준화, 측정 시점 고정
시료와 실제 충전품 상태가 다름상부에서만 채취, 침강초·중·말 시료 비교이송 중 다점 채취
비중이 낮게 나옴탈포 부족, 기포 혼입현미경으로 기포 확인진공 조건·시간 관리, 배출 시 공기 혼입 방지
색·향이 견본과 다름견본 변질, 원료 로트 변경견본 설정일 확인, 원료 로트 대조견본 주기 갱신, 원료 로트 기록
pH 조정이 매번 필요원료 로트 편차, 처방 마진 부족조정 이력 추세 분석근본 원인 조사, 개발과 처방 검토
내용물 저장 용기 뒤바뀜유사 제품 동시 제조, 라벨 미확인라벨·충전 지시 대조이관 시 2인 대조 서명
오래된 내용물 충전보관 기한 미설정제조일 확인보관 기한 설정, 초과 시 재검사
기록서 사후 일괄 작성바쁜 작업 중 기록 미룸지시값과 실측값이 모두 같음단계별 즉시 기록, 관리자 현장 확인

표에 다 담지 못한 경험 몇 가지를 덧붙인다.

첫째, 내용물 판정에는 검사 결과뿐 아니라 제조기록서 검토가 함께 들어가야 한다. 검사 결과가 모두 적합이어도 기록서에 공정 조건 이탈이 있거나 서명이 빠져 있으면 그 배치는 판정을 보류해야 한다. 나는 품질 부서가 판정할 때 검사 성적과 기록서를 나란히 놓고 보게 했다. 기록서 검토를 출하 직전에야 하는 공장이 많은데, 그때 문제를 발견하면 이미 충전과 포장이 끝난 뒤다.

둘째, 작업자가 일탈을 편하게 보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실수를 보고한 작업자를 질책하면, 다음 실수는 보고되지 않는다. 숨겨진 실수는 반드시 클레임이 되어 돌아온다. 나는 실수를 스스로 보고한 작업자에게는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 그 보고 하나가 회수 한 건보다 훨씬 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셋째, 검사실 장비 관리가 공정 관리만큼 중요하다. pH 미터 전극이 노후했거나 점도계가 교정되지 않았으면, 공장은 틀린 숫자로 판정을 하게 된다. pH 미터는 사용 전 표준 완충액으로 교정하고, 점도계와 저울과 온도계는 정해진 주기로 점검하고 기록한다. 검사 장비가 틀리면 검사를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넷째, 내용물 데이터를 배치별로 버리지 말고 추세로 봐야 한다. 점도와 pH를 배치 순서대로 그래프로 그려 보면, 규격 안에 있으면서도 한쪽으로 서서히 움직이는 흐름이 보인다. 규격을 벗어나기 전에 그 흐름을 잡으면, 원료 로트 변화나 설비 이상을 미리 알 수 있다. 숫자는 한 배치씩 보면 판정이고, 모아서 보면 경고다.

다섯째, 교대 근무 때 공정이 이어지는 경우에는 인수인계를 문서로 해야 한다. 냉각 중인 배치를 다음 조에 넘길 때, 현재 온도와 남은 공정과 특이사항을 기록서에 적고 양쪽이 서명한다. 말로 넘긴 정보는 다음 조가 바빠지는 순간 사라진다.

25.11 정리하며

공정 관리와 내용물 검사는 제조와 충전 사이에 놓인 마지막 관문이다. 원료가 아무리 좋고 처방이 아무리 훌륭해도, 정해진 조건으로 만들지 않으면 좋은 제품이 나오지 않고, 만든 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불량이 그대로 소비자에게 간다.

이 장에서 이야기한 것을 줄이면 세 가지다. 정해진 조건대로 만들고, 만든 대로 그 자리에서 적고, 판정이 끝나기 전에는 넘기지 않는다.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 지키기 어려운 습관이다. 바쁜 날일수록 기록을 미루고 싶고, 납기가 급할수록 판정 전에 충전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공장의 사고는 대개 그런 날 생긴다. 내용물 단계에서 멈춰 세운 불량은 공장의 비용으로 끝나지만, 그 단계를 지나간 불량은 회사의 신뢰로 갚게 된다. 나는 탱크 앞에 설 때마다, 이 내용물이 아직 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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