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점증과 유변학

이 글의 핵심: 점도와 요변성의 기초, 점증제 세 갈래, 카보머 수화·중화의 함정, 점도 측정 조건과 트러블슈팅까지 점증과 유변학을 정리했습니다.

신입 시절, 제가 처음으로 크게 혼났던 불량이 점도 문제였습니다. 분명 처방대로 카보머를 넣고 중화까지 했는데, 다음 날 점도를 재 보니 표준의 절반밖에 안 나온 겁니다. 원료를 다시 확인하고, 저울을 의심하고, 정제수까지 새로 받아 봐도 그대로였습니다. 사흘을 헤매다 알아낸 원인은 어이없게도 “재는 조건”이었습니다. 앞 배치는 뜨거울 때, 이 배치는 식은 다음 다른 회전수로 쟀던 겁니다. 제품은 멀쩡했고 틀린 건 저였습니다. 그때 배웠습니다. 점도는 그냥 “되직함”이 아니라, 조건과 함께 봐야 하는 성질이라는 것을요.

6장에서 유화를 안정하게 하려면 연속상을 되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이 “되직함”을 정면으로 다루는 것이 이 장입니다. 점도를 어떻게 만들고, 흐르다 멈추는 성질을 어떻게 설계하며, 그것이 안정성과 사용감을 어떻게 좌우하는지 — 유변학(流變學, 물질이 흐르고 변형되는 성질을 다루는 학문)의 이야기입니다. 어렵게 들리지만 결국 “이 제품이 통 안에서는 얌전히 있다가 손에 덜면 부드럽게 발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지극히 현장다운 질문입니다.

7.1 점도, 그리고 화장품이 물과 다른 점

점도는 쉽게 말해 “흐르기 싫어하는 정도”입니다. 물은 점도가 낮아 잘 흐르고, 꿀은 점도가 높아 천천히 흐릅니다. 그런데 물이나 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게 젓든 살살 젓든 점도가 일정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액체를 뉴턴 유체라고 부릅니다.

화장품은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크림을 통에 담아 두면 흐르지 않을 만큼 되직하지만,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부드럽게 퍼집니다. 젓는 힘(전단)에 따라 점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을 줄수록 묽어지는 성질을 전단담화(전단박화)라고 하고, 대부분의 로션·크림·겔·세럼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성질이야말로 스킨케어 제형의 핵심입니다. “가만히 있을 땐 되직하고, 바를 땐 부드러운” 이상적인 사용감이 바로 여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생산자가 이 성질을 몸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화장품의 점도는 하나의 고정된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세게 힘을 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곡선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크림 점도가 얼마냐”는 질문은 사실 반쪽짜리입니다. “얼마의 힘으로 저었을 때 얼마냐”까지 말해야 제대로 된 질문이 됩니다. 제가 신입 때 헤맨 것도 바로 이 반쪽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7.2 요변성 — 흔들면 묽어지고, 두면 되돌아온다

전단담화에 시간이라는 요소가 더해진 것이 요변성(搖變性)입니다. 젓거나 흔들면 묽어졌다가, 가만히 두면 서서히 원래의 되직함으로 되돌아오는 성질입니다. 잔탄검을 넣은 제형이나 펄이 든 제품에서 흔히 봅니다.

요변성은 생산자에게 두 가지로 고맙습니다. 하나는 안정성입니다. 제품이 정지해 있을 때는 되직한 구조가 살아나 방울이나 펄·안료를 붙들어 두므로 크리밍·침강이 느려집니다. 다른 하나는 사용감입니다. 덜거나 바를 때는 구조가 풀려 부드럽게 나오고 퍼집니다. “통 안에서는 안정하게, 손에서는 부드럽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요변성이 잡아 줍니다.

다만 이 요변성이 현장에서는 골칫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겪은 일인데, 요변성이 강한 펄 에센스를 충전하는데 충전량이 자꾸 들쭉날쭉했습니다. 노즐에서 나오는 순간의 점도가 그때그때 달라서, 같은 시간을 채워도 양이 달랐던 겁니다. 결국 충전 전에 일정한 조건으로 미리 저어(예비 전단) 점도를 고르게 맞춘 뒤 충전하는 것으로 해결했습니다. 요변성은 잘 쓰면 안정성과 사용감을 주지만, 지나치면 충전 편차와 기포 혼입 같은 공정 문제를 부릅니다(18장). 좋은 성질도 정도를 넘으면 불량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이때 배웠습니다.

7.3 점증제의 세 갈래

수상의 점도를 만드는 점증제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각기 성격과 다루는 법이 달라, 어떤 점증제를 쓰느냐가 제형의 사용감과 공정을 상당 부분 결정합니다.

계열대표 원료성격주의점
합성 아크릴계카보머투명, 맑고 산뜻한 사용감중화 필요, 전해질·낮은 pH에 약함
천연·검류잔탄검, 검류요변성 큼, 자연스러운 점도, 현탁력끈적일 수 있음, 미생물 관리
셀룰로오스계하이드록시에틸셀룰로오스부드러운 점도수화에 시간, 덩어리 주의
액상 점증제(전중화형)소듐폴리아크릴레이트, 아크릴레이트 코폴리머냉공정 가능, 다루기 편함종류별 전해질 내성 차이

여기서 실무의 갈림길이 하나 있습니다. 카보머는 맑고 산뜻해 세럼·겔에 즐겨 쓰지만 중화라는 손이 한 번 더 갑니다. 검류는 다루기 쉽고 현탁력이 좋지만 끈적임과 미생물에 신경 써야 합니다. 특히 천연 검류는 그 자체가 미생물의 먹이가 되기 쉬워서, 원료 보관 중에도, 제품 안에서도 방부에 더 신경 써야 합니다. 저는 여름철에 검류 원료를 개봉한 채 방치했다가 원료가 상해 그 배치의 변취로 이어진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 많이 쓰는 액상 점증제(미리 중화된 형태)는 찬물에서도 바로 점도가 올라와 공정이 간편합니다. 무엇이 좋다기보다, 원하는 사용감과 공정에 맞춰 고르고 조합하는 것입니다.

7.4 카보머 다루기 — 수화와 중화, 그리고 함정들

점증제 중에서 생산자가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카보머입니다. 카보머는 두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점도를 냅니다.

첫째는 수화입니다. 카보머 분말을 물에 고르게 풀어 충분히 부풀리는 단계입니다. 여기서 가장 흔한 사고가 덩어리입니다. 분말을 한꺼번에 쏟아부으면 겉만 젖고 속은 마른 덩어리가 생기는데, 현장에서는 이걸 “피시아이(fish eye, 생선 눈)”라고 부릅니다. 겉이 먼저 젤이 되어 물을 막아 버리니 속은 영영 안 녹습니다. 한번 생긴 이 덩어리는 아무리 오래 저어도 잘 안 풀려서, 제품에 반투명한 알갱이처럼 남아 이물 클레임이 됩니다. 그래서 카보머는 물을 저어 소용돌이를 만든 상태에서 그 가장자리로 천천히 흩뿌려 넣습니다. 저는 신입들에게 “눈 오듯이 뿌려라”라고 가르칩니다. 급하게 부으면 반드시 덩어리가 생깁니다.

둘째는 중화입니다. 수화만 된 카보머 용액은 산성이라 아직 점도가 낮습니다. 여기에 중화제(수산화나트륨, 트라이에탄올아민, 아르기닌 등)를 넣어 pH를 올려 주면, 카보머 분자가 활짝 펴지면서 그제야 투명하고 되직한 겔이 됩니다. 이 중화가 카보머 점증의 핵심이며, 겔·세럼 공정의 중심입니다(14장). 여기서도 함정이 있습니다. 중화제를 한꺼번에 넣으면 그 부분만 국소적으로 확 젤이 되어 덩어리가 지므로, 중화제도 소량씩 나눠 고르게 저으며 넣어야 합니다.

카보머에는 약점도 있습니다. 소금기(전해질)에 약하다는 점입니다. 전해질이 많은 원료가 들어가거나 pH가 너무 낮으면 카보머의 점도가 뚝 떨어집니다. 제가 여러 번 본 상황이 이겁니다. 랩에서는 점도가 잘 나왔는데 양산에서 유독 묽게 나오는 겁니다. 원인을 따라가 보면 활성성분이나 추출물 안에 든 염(전해질)이 범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해질이 많은 처방에서는 전해질에 강한 카보머 종류(내염성 그레이드)를 고르거나 다른 점증제와 조합합니다. “분명히 카보머를 넣었는데 점도가 안 나온다”면 십중팔구 중화가 덜 되었거나, 과중화되었거나, 전해질·pH 문제입니다. 점도가 안 나올 때 카보머를 더 넣는 것은 대개 답이 아닙니다. 먼저 pH와 전해질부터 봐야 합니다.

7.5 점도와 안정성은 한 몸이다

6장에서 본 원리를 여기서 다시 확인합니다. 연속상의 점도를 높이면 방울이 움직이기 어려워져 크리밍·침강이 느려집니다. 점증은 단순히 제형을 되직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유화와 현탁을 안정하게 붙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특히 요변성이 있는 점증제는 펄·안료가 가라앉지 않게 붙드는 데 유리합니다. 제품이 정지해 있을 때 구조가 살아나 무거운 입자를 그물처럼 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펄 제품이나 분산형 제형에서는 점도만이 아니라 “정지 시 구조가 얼마나 살아 있느냐”를 함께 봅니다. 점도 숫자만 보고 방심하면, 유통 중에 펄이 바닥에 가라앉아 위아래 색이 달라지는 클레임을 만나게 됩니다.

7.6 사용감을 설계한다

소비자가 제품에서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사용감입니다. 그리고 그 사용감의 상당 부분이 유변학에서 나옵니다. 통에서 덜 때의 되직함, 손에서 밀 때 부드럽게 퍼지는 느낌, 바른 뒤의 잔여감 — 이 모두가 점도와 전단담화 곡선의 모양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점증제의 선택이 사용감의 성격을 좌우합니다. 카보머로 점도를 잡으면 맑고 산뜻하게 밀리는 느낌이 나고, 검류로 잡으면 묵직하고 촉촉하지만 끈적임이 남기 쉽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사용감에 따라 점증제를 고르고, 여러 종류를 섞어 “되직하되 산뜻한”, “촉촉하되 안 끈적이는” 같은 미묘한 지점을 맞춰 갑니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점도를 같게 맞춰도 어떤 점증제로 맞췄느냐에 따라 사용감이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점증제를 대체할 때 “점도만 맞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사용감 클레임이 옵니다. 사용감을 숫자와 언어로 평가하는 방법은 39장(관능·사용감 평가)에서 다룹니다.

7.7 점도는 어떻게 측정하고 관리하나

이 장 첫머리에서 제가 사흘을 헤맨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화장품은 전단에 따라 점도가 변하므로, 점도를 잴 때의 조건을 고정하지 않으면 숫자가 매번 달라집니다. 같은 제품이라도 점도계의 스핀들 종류, 회전 속도(rpm), 측정 온도, 측정 시간을 다르게 하면 다른 값이 나옵니다.

그래서 점도는 “얼마”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얼마”로 관리해야 합니다. 사내 표준으로 스핀들 번호·rpm·측정 온도·측정 시간(그리고 측정 전 몇 분을 안정시키는지까지)을 정해 두고 늘 같은 조건으로 재야 배치 간 점도를 제대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온도는 점도에 크게 영향을 줍니다. 같은 크림도 겨울철 서늘한 시험실과 여름철 더운 시험실에서 다른 값이 나오니, 측정 온도를 25℃ 같은 표준으로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측정 조건을 정하고 지키는 것이 재현성의 출발점이며, 반제품·완제품의 점도 검사는 25장에서 다룹니다.

7.8 현장 트러블슈팅과 주의점

점증·점도에서 자주 만나는 문제와 대응을 정리합니다. 제 노트에 오래 쌓인 것들입니다.

증상흔한 원인조치
배치마다 점도가 다르다측정 조건(스핀들·rpm·온도) 제각각측정 조건 표준화 후 재비교, 그다음 공정 점검
카보머 덩어리(피시아이)분말 급투입, 분산 부족소용돌이에 천천히 흩뿌림, 프리믹스 활용, 필요 시 여과
카보머 점도가 안 나온다중화 부족·과중화, 전해질 과다pH를 목표로 소량씩 재조절, 내염성 그레이드·조합 검토
랩은 되는데 양산만 묽다전해질(활성·추출물), 전단·온도 차이전해질원 파악, 내염성 점증제, 스케일업 조건 점검(22장)
시간이 지나며 점도가 떨어진다저pH·전해질, 검류의 미생물 분해pH·완충 점검(8장), 방부 재확인(9·29장)
겔·세럼에 기포가 남는다고전단 혼입, 탈포 부족진공 탈포, 마무리는 저전단, 냉각 후 정치
끈적임이 심하다검류 과다, 점증제 조합 부적절점증제 종류·비율 조정, 실리콘·에스터로 사용감 보정
점도가 높아 충전이 안 된다점도·요변성 과다충전 온도·조건 조정, 처방 점도 재설정(18장)

주의점 몇 가지를 경험에서 덧붙입니다. 첫째, 점도가 이상하면 제품보다 측정을 먼저 의심하라. 저처럼 사흘을 날리지 않으려면, 표준 조건으로 다시 재 보는 것이 첫 번째 일입니다. 둘째, 카보머는 급하면 반드시 덩어리진다. 수화도 중화도 “천천히, 고르게”가 원칙입니다. 셋째, 점도가 안 나온다고 점증제부터 더 넣지 마라. pH와 전해질이 진짜 원인인 경우가 훨씬 많고, 점증제를 더 넣으면 사용감만 망칩니다. 넷째, 점증제를 대체할 땐 점도가 아니라 사용감까지 봐라. 숫자가 같아도 느낌이 다르면 소비자는 바로 압니다. 다섯째, 랩과 양산은 다르다. 랩 비커에서 잘 나온 점도가 큰 탱크에서 안 나오는 일은 흔하며, 그 원인은 대개 전단·냉각·전해질에 있습니다(22장).

7.9 정리하며

이 장에서 기억하실 것은 이렇습니다. 첫째, 화장품은 대부분 전단담화 유체여서 가만히 있을 땐 되직하고 바를 땐 부드러워지며, 여기에 시간이 더해진 요변성이 안정성과 사용감을 동시에 잡아 줍니다. 둘째, 점증제는 카보머(중화 필요·맑음·전해질에 약함), 검류(현탁력·끈적임·미생물), 액상 점증제(냉공정·편리)로 성격이 달라 목적에 맞게 고르고 조합하며, 카보머는 수화(덩어리 방지)와 중화가 생명입니다. 셋째, 점도는 안정성·사용감과 한 몸이고, 전단에 따라 값이 변하므로 반드시 같은 조건으로 측정·관리해야 하며, 이상이 생기면 제품보다 측정 조건과 pH·전해질을 먼저 살피는 것이 현장의 지혜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제형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축, pH로 넘어갑니다. 카보머의 점도, 방부제의 효과, 활성성분의 안정성, 피부 적합성이 모두 pH 하나에 걸려 있습니다. 8장에서 pH와 완충 설계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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