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방부 시스템 설계

제가 겪은 가장 서늘한 불량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량이었습니다. 어느 로션 배치가 제조·충전·검사를 다 통과하고 출하까지 됐는데, 몇 주 뒤 방부력 확인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했습니다. 분리도 없고 변색도 없고 냄새도 그럴듯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미생물이 자라고 있었던 겁니다. 색이 변하거나 냄새가 날 무렵이면 이미 늦습니다. 방부의 무서움은 여기 있습니다. 다른 불량은 눈에 보여서 걸러 낼 기회라도 있지만, 방부 실패는 소비자 손에 들어간 뒤에야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8장까지 우리는 유화·점증·pH를 다뤘습니다. 모두 제품을 “제대로”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장은 그렇게 잘 만든 제품을 “상하지 않게 지키는” 이야기입니다. 4장에서 방부 원료 하나하나의 성격을 보았다면, 이 장에서는 그 원료들을 어떻게 짜 맞춰 실제로 뚫리지 않는 방부 시스템을 만드는지를 다룹니다. 이 책에서 제가 특히 힘주어 쓰고 싶은 장이기도 합니다.

9.1 왜 방부가 이렇게 어려운가

스킨케어 제품은 미생물에게 훌륭한 서식지입니다. 1장에서 말한 대로 제품의 대부분이 물이고, 거기에 글리세린·추출물·단백질 같은 영양분까지 풍부합니다. 따뜻하고 축축하고 먹을 것 많은 이 환경은, 미생물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낙원입니다. 아무 대책 없이 두면 며칠 만에 균이 창궐합니다.

여기서 생산자가 먼저 마음을 고쳐먹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방부의 목표는 “무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수술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소비자가 몇 달씩 손으로 찍어 쓰는 제품을 만듭니다. 제조 중에도, 유통 중에도, 소비자가 쓰는 중에도 미생물은 어떻게든 들어옵니다. 그래서 방부의 진짜 목표는 “균이 절대 안 들어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온 균이 자라지 못하고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방부 시스템은 무균실이 아니라, 침입자가 살아남지 못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 관점의 전환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위생을 철저히 해도 오염 가능성은 0이 되지 않으므로, 제품 자체가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9.2 적을 알아야 방부가 보인다

방부 시스템을 설계하려면 우리가 막으려는 상대를 알아야 합니다. 화장품을 위협하는 미생물은 크게 세 부류입니다.

세균은 가장 흔하고 빠른 위협입니다. 특히 그람음성 세균 중 슈도모나스는 화장품 현장의 골칫거리입니다. 번식이 빠르고, 어떤 방부 시스템은 오히려 분해해 먹어 치우기도 하며, 정제수 배관 같은 축축한 곳에 끈질기게 자리 잡습니다. 제가 앞서 말한 그 서늘한 불량의 범인도 이런 그람음성 세균이었습니다. 곰팡이와 효모는 세균보다 느리지만, 세균이 잘 안 자라는 낮은 pH나 일부 조건에서도 자라날 수 있어 따로 대비해야 합니다.

여기에 시점으로 나눠 보면, 1차 오염은 제조 과정에서(정제수·원료·설비·작업자) 들어오는 것이고, 2차 오염은 소비자가 손이나 도구로 찍어 쓰며 들어오는 것입니다. 방부 시스템은 이 둘을 모두 견뎌야 합니다. 특히 2차 오염은 통제 밖의 일이라, 제품이 사용 기간 내내 스스로 버티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이 미생물들이 자라는 곳은 언제나 물(수상)이라는 점도 기억해 둡니다. 그래서 방부제가 수상에 충분히 있어야 한다는 4장의 이야기가 여기서 다시 중요해집니다.

9.3 방부제 조합의 원리

방부제 하나로 모든 미생물을 다 막는 경우는 드뭅니다. 세균에 강한 방부제가 곰팡이에는 약하고, 그 반대도 흔합니다. 그래서 방부는 대개 여러 방부제를 조합해 설계합니다. 조합의 원리는 네 가지입니다.

첫째, 광범위하게 덮습니다. 세균을 잡는 방부제와 곰팡이·효모를 잡는 방부제를 함께 넣어 사각지대를 없앱니다. 예컨대 세균에 강하지만 곰팡이에 약한 성분에는, 곰팡이를 보완하는 성분을 짝지어 줍니다.

둘째, 상승작용을 활용합니다. 어떤 조합은 각각의 힘을 합친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냅니다. 페녹시에탄올에 에틸헥실글리세린을 더하는 조합이 대표적입니다. 에틸헥실글리세린은 그 자체로는 방부력이 약하지만, 함께 쓰면 페녹시에탄올의 힘을 키워 줍니다.

셋째, 수상과 유상에 고루 배치합니다. 4장에서 본 대로 방부제는 용해성에 따라 수상·유상에 나뉘어 들어가므로, 물에 잘 녹는 것과 기름에 잘 녹는 것을 조합해 양쪽 상을 모두 지킵니다. 미생물이 자라는 수상에 방부제가 충분히 남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넷째, pH 범위를 함께 봅니다. 8장에서 본 대로 유기산계 방부제는 낮은 pH에서만 힘을 쓰므로, 제형의 pH가 그 범위를 벗어나면 다른 방부제로 보완해야 합니다. 넓은 pH에서 듣는 성분과 좁은 범위에서 강한 성분을 섞어 안전판을 넓힙니다.

9.4 허들 테크놀로지 — 무방부·저방부 설계의 핵심

요즘은 “무방부”를 내세우는 제품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가 있습니다. 무방부는 “방부를 안 한다”가 아니라 “전통적 방부제를 쓰지 않는다”는 뜻이고, 실제로는 방부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 방법이 허들 테크놀로지, 곧 여러 개의 낮은 장벽을 겹쳐 미생물이 넘지 못하게 하는 전략입니다.

방부제 하나로 높은 벽을 세우는 대신, 미생물이 살기 어려운 조건을 여러 겹으로 쌓는 것입니다. 각각은 미생물을 완전히 죽이지 못하는 낮은 허들이지만, 여러 개를 겹치면 미생물이 그 모두를 넘지 못하고 죽습니다.

허들원리현장 수단
낮은 수분활성도미생물이 쓸 수 있는 물을 줄임글리세린·글라이콜 등 폴리올 다량 배합
pH 조절미생물이 싫어하는 산도로약산성으로 관리(8장)
킬레이트제세포막을 약하게, 필요 금속 차단EDTA, 소듐피테이트, 글루코노락톤
멀티올·보조 항균약한 방부·항균력을 더함카프릴릴글라이콜, 1,2-헥산다이올, 에틸헥실글리세린
포장오염 경로 자체를 차단에어리스·튜브·펌프 용기

킬레이트제(EDTA 등)를 조금 더 설명하면, 이것은 그 자체로 방부제는 아니지만 방부의 숨은 조력자입니다. 그람음성 세균의 세포막을 약하게 만들고 미생물이 필요로 하는 금속 이온을 붙잡아, 다른 방부제나 허들이 잘 듣게 해 줍니다. 저는 방부가 아슬아슬한 처방에 킬레이트제를 소량 넣어 방부력 시험을 통과시킨 경험이 여러 번 있습니다. 방부가 약하다 싶으면 킬레이트제부터 검토해 볼 만합니다.

정리하면, 무방부 설계는 방부제를 뺀 만큼 폴리올·pH·킬레이트·포장이라는 다른 허들을 촘촘히 쌓아 그 빈자리를 메우는 일입니다. 결코 방부를 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더 정교하게 하는 것입니다.

9.5 방부를 무너뜨리는 것들 — 불활성화

4장에서 잠깐 짚은 불활성화를 여기서 자세히 봅니다. 방부제를 처방대로 넣었는데도 방부가 뚫리는 일이 실제로 자주 일어나는데, 그 원인의 상당수가 방부제가 힘을 잃는 데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이 계면활성제에 붙잡히는 경우입니다. 비이온 유화제가 만드는 미셀 안에 방부제가 갇히면, 정작 미생물이 사는 수상에는 방부제가 부족해집니다. 오일에 잘 녹는 방부제가 유상으로 지나치게 빠져나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라스틱 용기가 방부제를 서서히 빨아들이는 경우, 시간이 지나며 제품 속 방부제가 줄어 유통 후반에 방부가 약해지기도 합니다.

원료가 오염원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크게 데인 적이 있는데, 방부 설계는 멀쩡한데 자꾸 특정 원료를 쓴 배치에서만 미생물이 나왔습니다. 추적해 보니 그 천연 추출물 원료 자체가 입고 시점에 이미 오염돼 있었습니다. 방부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오염량에는 한계가 있는데, 원료가 이미 균을 잔뜩 품고 들어오면 그 한계를 넘겨 버립니다. 그 뒤로는 미생물 위험이 큰 원료의 입고 검사를 훨씬 까다롭게 바꿨습니다(24·27장).

정제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정제수 배관이나 탱크에 미생물막(바이오필름)이 끼면, 아무리 방부를 잘 설계해도 매 배치가 오염된 물로 시작하는 셈이 됩니다. 방부 문제가 반복되면 처방보다 먼저 정제수와 설비 위생을 의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20·27장).

9.6 설계 원칙, 그리고 검증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방부 시스템 설계 원칙으로 모으면 이렇습니다. 광범위하게(세균·곰팡이·효모 모두) 덮고, 한도 안에서 충분한 양을 쓰며, 수상·유상에 고루 배치하고, 제형의 pH 범위에서 실제로 듣는 조합을 고르고, 필요하면 허들(폴리올·킬레이트·포장)을 병용하며, 포장까지 방부의 일부로 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설계는 마지막 한 가지가 없으면 종이 위의 계획일 뿐입니다. 바로 검증입니다. 아무리 잘 설계한 방부도 그 제형에서 실제로 듣는지는 방부력 시험(챌린지 테스트)으로 확인해야만 알 수 있습니다. 일부러 미생물을 접종해 시간이 지나며 줄어드는지를 보는 이 시험은 29장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제가 계속 강조하는 “넣었다고 방부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의 종착점이 바로 이 시험입니다. 설계로 자신 있게 만들되, 시험으로 반드시 확인한다 — 이것이 방부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9.7 현장 트러블슈팅과 주의점

방부에서 만나는 문제와 대응을 정리합니다. 방부는 결과가 늦게, 그리고 무섭게 나타나므로, 아래 표는 특히 예방의 관점에서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증상흔한 원인조치
방부력 시험을 통과 못 한다방부 조합·양 부족, 불활성화, pH 부적합조합·양 재설계, 계면활성제·용기 상용성 점검, pH 재확인
세균은 잡히는데 곰팡이가 남는다항진균 커버 부족곰팡이 대응 성분 보강, 조합 재구성
특정 원료 쓴 배치만 오염된다원료 자체 오염(추출물·천연물)원료 입고 미생물 검사 강화, 공급처 관리(24장)
방부 문제가 여러 배치에 반복된다정제수·설비 바이오필름정제수·배관·탱크 세척·살균 점검(20·27장)
무방부인데 곰팡이가 핀다허들 부족, 수분활성도 높음, 포장 취약폴리올·킬레이트 보강, 에어리스 포장 검토
유통 후반에 방부가 약해진다용기 흡착, 시간 경과로 방부제 감소용기 재질 상용성 확인, 방부 여유분·포장 재검토
pH 올린 뒤 방부가 뚫린다유기산계 방부제가 pH 상승으로 약화pH 목표 재확인, 넓은 pH 커버 성분 추가(8장)
향·추출물 넣은 뒤 방부가 약해진다성분이 방부를 소모·간섭방부 여유분 확보, 재조합 후 재시험

경험에서 얻은 주의점을 덧붙입니다. 첫째, 방부는 눈이 아니라 시험으로 판단하라. 멀쩡해 보인다고 안심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합니다. 둘째, 방부가 뚫리면 처방만 보지 말고 정제수·원료·설비·포장을 함께 보라. 범인은 처방 밖에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셋째, 방부는 여유를 두고 설계하라. 시험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방부는, 원료 로트가 조금만 바뀌거나 향을 조금만 더 넣어도 무너집니다. 넷째, 위험한 원료는 입고부터 막아라. 이미 오염된 원료가 들어오면 방부 설계로는 감당이 안 됩니다. 다섯째, 무방부일수록 더 겸손하라. 방부제라는 든든한 벽이 없는 만큼, 허들 하나하나와 포장·위생을 더 철저히 챙겨야 합니다.

9.8 정리하며

이 장에서 기억하실 것은 이렇습니다. 첫째, 방부의 목표는 무균이 아니라 “들어온 균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제품이 사용 기간 내내 스스로를 지켜야 합니다. 둘째, 방부제는 광범위·상승작용·상 분배·pH를 고려해 조합하고, 무방부는 방부를 덜 하는 게 아니라 폴리올·pH·킬레이트·포장이라는 허들을 촘촘히 쌓는 더 정교한 방부입니다. 셋째, 방부제는 계면활성제·용기·원료·정제수 때문에 힘을 잃을 수 있으므로, 설계는 여유 있게 하고 반드시 방부력 시험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이로써 2부, 제형의 과학을 마칩니다. 유화·점증·pH·방부라는 네 개의 축으로 “제형이 왜 그렇게 되고 왜 그렇게 무너지는지”를 짚었습니다. 이제 3부에서는 이 원리들을 실제 공정으로 옮깁니다. 첫 장인 10장에서는 모든 제조의 출발점 — 칭량과 수상·유상 준비,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정제수 시스템을 다룹니다.

방부 관련 글 더 보기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현장에서 배우는 화장품 생산기술 메이크업편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