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주제: 화장품 유화 불량의 원인 분석. 분리·크리밍·합일, 점도 이상, 거친 결과 재결정·피시아이, 기포 혼입을 불량이 드러난 시점과 현미경 관찰, 제조 기록, 설비·원료 점검으로 좁혀 가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목차
어느 여름, 출하한 지 두 달쯤 된 영양 크림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 뚜껑을 열면 표면에 얇은 기름 띠가 떠 있다는 것이었다. 보관용 검체를 꺼내 보니 같은 현상이 있었다. 처음 회의에서는 처방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오일 함량이 높은 처방이니 유화제를 늘려야 한다, 여름이라 더워서 그렇다. 연구팀은 이미 처방 보강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같은 처방의 이전 로트들은 멀쩡했다. 안정성 시험에서도 문제가 없던 처방이었다. 그래서 문제가 된 로트들의 공통점을 찾아봤다. 모두 같은 유화기에서 만들었고, 모두 그 유화기의 호모믹서를 마지막으로 정비한 지 1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정비팀에 요청해 호모믹서를 열어 보니 로터와 스테이터 사이의 간극이 신품보다 눈에 띄게 벌어져 있었다. 마모였다. 같은 회전수, 같은 시간을 돌려도 전단력이 약해져 입자가 예전만큼 작아지지 않았고, 큰 입자들이 시간이 지나며 뭉치고 합쳐져 위로 떠오른 것이다. 문제 로트의 보관용 검체를 현미경으로 보니 이전 로트보다 입자가 확연히 컸다.
처방은 그대로였다. 바뀐 것은 설비였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았다. 마모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유화 불량은 스킨케어 공장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원인을 헷갈리기 쉬운 불량이다. 같은 분리라도 처방, 원료, 설비, 공정 조건, 보관 조건 중 어디서 왔는지에 따라 대책이 완전히 다르다. 유화의 원리와 크림·로션의 제조 공정, 냉각과 숙성, 스케일업은 앞에서 다뤘고, 내용물(벌크) 검사와 조정·폐기 판단도 이미 이야기했다. 이 장에서는 유화 불량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어떻게 좁혀 가는지를 불량 유형별로 정리한다.
31.1 유화 불량의 종류 — 무엇이 어떻게 무너지는가

현장에서 분리라고 한마디로 부르는 현상도 안을 들여다보면 단계가 다르다. 어느 단계에서 발견했느냐에 따라 원인 후보와 되돌릴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
| 불량 유형 | 보이는 모습 | 안에서 일어나는 일 | 되돌릴 수 있는가 |
|---|---|---|---|
| 크리밍 | 위쪽이 진하고 아래쪽이 묽다, 상부에 하얀 층 | 오일 입자가 가벼워 위로 모인다(수중유형) | 흔들면 일시적으로 섞이지만 다시 뜬다 |
| 침강 | 바닥에 층이 생긴다 | 무거운 입자나 분체가 가라앉는다 | 흔들면 일시적으로 섞인다 |
| 응집 | 결이 거칠어지고 광택이 줄어든다 | 입자들이 서로 붙어 덩어리를 이룬다(합쳐지지는 않음) | 강한 전단으로 일부 풀린다 |
| 합일 | 표면에 기름 방울, 기름 띠 | 붙은 입자의 막이 깨져 큰 입자로 합쳐진다 | 되돌리기 어렵다 |
| 완전 분리 | 물층과 기름층이 갈라진다 | 합일이 진행되어 유화가 무너진다 | 되돌릴 수 없다 |
| 상전이 | 수중유형이 유중수형으로 바뀌어 질감과 전도도가 확 달라진다 | 온도·비율·유화제 조건이 바뀌어 연속상이 뒤집힌다 | 공정 중이면 조건 조정으로 가능한 경우도 있다 |
| 오스트발트 숙성 | 시간이 지나며 입자가 서서히 커진다 | 작은 입자의 오일이 큰 입자 쪽으로 옮겨 간다 | 되돌리기 어렵다 |
분리 말고도 유화 제품의 불량에는 점도 이상, 거친 결과 알갱이, 기포가 있다. 이 장에서는 이 네 가지를 차례로 다룬다. 변색과 냄새 변화, 미생물에 의한 분리, 결정성 이물은 원인 체계가 달라서 따로 다룬다. 다만 미생물이 자라도 유화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은 기억해 둬야 한다. 분리와 함께 냄새가 변했거나 가스가 차 있다면 유화 불량보다 미생물 오염을 먼저 의심한다.
31.2 불량이 드러난 시점으로 원인을 좁힌다
유화 불량 조사에서 내가 가장 먼저 묻는 것은 언제 처음 보였느냐다. 불량이 드러난 시점이 원인 후보를 절반 이상 줄여 준다.
| 처음 보인 시점 | 주로 의심하는 원인 | 먼저 확인할 것 |
|---|---|---|
| 유화 직후(유화기 안) | 유화 온도, 유화제 투입·용해, 수상·유상 투입 순서와 속도, 호모믹서 회전수·시간, 진공 | 제조 기록의 온도·회전수·시간, 원료 칭량 기록 |
| 냉각 중 | 냉각 속도, 냉각 중 교반 조건, 왁스·고형 원료의 재결정, 증점제 투입 온도 | 냉각 그래프, 투입 시점 온도 |
| 숙성(에이징) 중 | 숙성 온도, 내용물 저장 용기 상태, 숙성 시간 부족 상태에서의 판단 | 숙성 조건 기록, 숙성 전후 점도·현미경 |
| 이송·충전 중 | 펌프 전단, 충전기 호퍼 가온, 장시간 체류, 공기 혼입 | 이송 방식, 충전 시간, 호퍼 온도 |
| 안정성 시험 중 | 처방 여유 부족, 입자 크기 분포, 원료 로트, 용기 상용성 | 입도 비교, 원료 로트, 같은 처방 이전 로트 결과 |
| 출하 후(시장) | 유통·보관 온도, 입자 크기 서서히 증가, 사용 중 오염 | 보관용 검체 상태, 같은 로트 다른 검체 |
시점이 늦을수록 원인은 공장에서 더 먼 곳, 또는 더 오래 진행된 변화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유화 직후에 깨진 내용물은 그날 그 배치의 공정에서 무언가 어긋난 것이다. 반면 몇 달 뒤 시장에서 분리된 제품은 그날의 실수보다는 입자가 처음부터 조금 컸다거나, 처방의 여유가 적었다거나, 유통 중 고온에 노출됐다는 식의 느린 원인인 경우가 많다.
시장에서 분리가 나왔을 때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보관용 검체다. 공장에 보관한 같은 로트의 검체가 멀쩡하다면, 유통이나 보관 조건 쪽을 먼저 본다. 보관용 검체도 같이 분리됐다면, 그 로트는 처음부터 무언가 달랐다. 앞의 영양 크림 사례가 그랬다.
31.3 분리 — 위로 뜨고, 아래로 가라앉고, 기름이 배어 나온다
분리는 유화 불량의 대표다. 원인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입자를 처음부터 충분히 작게 만들지 못했거나, 입자를 둘러싼 막이 약하게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진 뒤에 막을 깨는 조건을 만났거나.
| 갈래 | 공장 원인 |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 확인 방법 |
|---|---|---|---|
| 입자를 작게 못 만들었다 | 호모믹서 회전수·시간 부족, 로터·스테이터 간극 마모 | 큰 입자가 남아 시간이 지나며 뜨거나 합쳐진다 | 현미경 입도, 호모믹서 간극 측정 |
| 유화 온도 낮음 | 유상 점도가 높아 잘게 깨지지 않는다 | 제조 기록 온도, 온도계 교정 | |
| 진공 불량으로 공기 혼입 | 공기가 전단을 흡수하고 입자 사이에 끼어든다 | 진공도 기록, 내용물 비중 | |
| 막을 약하게 만들었다 | 유화제 미용해·미분산 | 실제로 일하는 유화제가 부족하다 | 유상 투입 전 용해 상태 확인 기록 |
| 수상·유상 투입 순서·속도 오류 | 의도한 유화형이 안 생기거나 입자가 고르지 않다 | 투입 기록, 작업자 확인 | |
| 수상·유상 온도 차이 큼 | 섞이는 순간 고형 성분이 굳어 막 형성 방해 | 수상·유상 투입 직전 온도 | |
| 칭량 오류(유화제·증점제 누락·과소) | 처방과 다른 내용물이 된다 | 칭량 기록, 잔량 확인 | |
| 만든 뒤 막을 깼다 | 냉각 중 과도한 고속 교반 | 굳어 가는 막이 기계적으로 부서진다 | 냉각 중 회전수 기록 |
| 전해질·산·알코올을 높은 농도로 한꺼번에 투입 | 국부적으로 막이 무너진다 | 투입 방법·속도 | |
| 고온 보관·장시간 가온 | 막이 약해지고 입자 운동이 커진다 | 숙성·저장·호퍼 온도 | |
| 동결·해동 | 수상이 얼며 입자가 눌려 합쳐진다 | 운송·보관 기록, 계절 |
분리를 조사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미경으로 입자를 보는 것이다. 정상 로트와 불량 로트를 같은 배율로 나란히 놓으면 대부분의 경우 방향이 잡힌다. 불량 로트의 입자가 전체적으로 크면 입자를 작게 못 만든 쪽, 입자 크기는 비슷한데 서로 붙어 있으면 막이 약한 쪽, 일부에 아주 큰 기름 방울이 섞여 있으면 만든 뒤 무언가 막을 깬 쪽이다.

내가 분리 불량에서 가장 자주 만난 원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앞의 사례처럼 설비가 조금씩 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화제를 다 녹이지 않은 채 유화를 시작한 것이다. 고형 유화제는 유상에 넣고 온도를 올려도 바닥에 덩어리가 남아 있을 때가 있다. 겉으로는 녹은 것 같아도 교반을 멈추고 바닥을 보면 녹지 않은 알갱이가 보인다. 나는 유상 가온 후 교반을 잠시 멈추고 바닥과 벽면을 눈으로 확인하는 단계를 작업표준서에 넣게 했다.
31.4 점도 이상 — 높거나, 낮거나, 배치마다 다르다
점도는 유화 제품의 품질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숫자다. 점도가 규격을 벗어나면 사용감이 달라지고, 충전 중량과 펌프 토출량이 흔들리고, 안정성도 영향을 받는다.
| 현상 | 공장 원인 | 확인 방법 |
|---|---|---|
| 점도가 낮다 | 증점제 분산 불량(덩어리째 남아 일부만 일한다) | 내용물에 투명한 덩어리(피시아이) 유무 |
| 증점제를 높은 온도에서 투입(냉각 부족) | 투입 시점 온도 기록 | |
| 카보머류 중화 pH 부족·과다 | 중화 후 pH | |
| 고분자 증점제의 전단 파괴(투입 후 과도한 고속 교반) | 투입 후 호모 사용 여부·시간 | |
| 전해질·추출물 원료의 로트 변동(염 농도 증가) | 원료 로트, 전도도 | |
| 수상 증발 부족 보정·정제수 과다 투입 | 칭량 기록, 배치 총중량 | |
| 점도가 높다 | 수분 증발(가온 시간 길어짐, 진공 상태 장시간) | 배치 총중량, 가온 시간 |
| 냉각이 너무 빠르거나 냉각 중 교반 부족으로 덩어리 구조 | 냉각 그래프 | |
| 왁스·고급 알코올 로트 변동 | 원료 로트, 융점 | |
| 배치마다 다르다 | 계절에 따른 냉각수·실내 온도 변화 | 연간 추세, 냉각수 온도 |
| 작업자마다 다른 투입 속도·판단 | 작업자별 층별 분석 | |
| 숙성 시간·측정 조건 차이 | 측정 시점, 측정 온도, 스핀들 |
점도 이상에서 특히 조심할 것은 측정이다. 같은 내용물도 측정 온도가 2~3℃만 달라도 점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숙성 시간이 다르면 아예 다른 값이 나온다. 유화 제품의 점도는 만든 직후보다 하루 이틀 지나며 올라가는 경우가 많아서, 몇 시간 뒤에 잰 값과 하루 뒤에 잰 값을 비교하면 엉뚱한 결론이 나온다. 점도 불량을 조사할 때는 먼저 측정 조건(온도, 숙성 시간, 스핀들과 회전수, 시료 채취 위치)이 정상 로트 때와 같았는지부터 확인한다.
카보머 같은 고분자 증점제를 쓰는 제품에서는 전단 파괴가 자주 문제가 된다. 증점제가 다 풀린 뒤에 호모믹서를 오래 돌리면 고분자 사슬이 끊어져 점도가 떨어지고, 떨어진 점도는 돌아오지 않는다. 작업자가 덩어리를 풀려고 호모를 더 돌리는 선의의 행동이 오히려 점도를 망가뜨린다. 증점제를 쓰는 제품의 작업표준서에는 투입 후 고속 교반 허용 시간을 숫자로 적어 두는 것이 좋다.
31.5 입자와 결 — 거칠고, 알갱이가 보이고, 광택이 없다
점도는 규격 안인데 손등에 펴 보면 거칠거나, 작은 알갱이가 느껴지거나, 표면에 광택이 없는 경우가 있다. 소비자는 숫자보다 이런 감각에 더 민감하다.
| 현상 | 흔한 원인 | 어디서 생기는가 | 확인 방법 |
|---|---|---|---|
| 하얀 작은 알갱이 | 왁스·고급 알코올·고형 유화제의 재결정 | 냉각 중 너무 낮은 온도에서 교반이 약할 때, 유상 일부가 벽면에서 먼저 굳어 떨어질 때 | 알갱이를 가열하면 녹는지, 현미경 결정 확인 |
| 투명한 젤 덩어리(피시아이) | 증점제가 물을 먹으며 겉만 붓고 속은 마른 채 뭉침 | 증점제를 한꺼번에 투입, 분산 매체 없이 투입 | 덩어리를 눌러 보면 속이 마른 가루 |
| 벽면 굳은 조각 | 스크래퍼가 벽면을 제대로 긁지 못해 냉각된 벽에서 굳은 층이 떨어짐 | 스크래퍼 블레이드 마모, 냉각 재킷 온도 너무 낮음 | 배치 후 유화기 벽면 상태 |
| 전체적으로 거친 결 | 입자 크기 큼, 응집 | 호모 부족, 간극 마모 | 현미경 |
| 광택 없음, 탁함 | 입자 응집, 기포 미세 혼입, 결정 | 냉각 조건, 진공 | 현미경, 비중 |
| 분체가 뭉친 점 | 분체 원료 분산 부족 | 분체를 유상·수상에 미리 분산하지 않고 투입 | 확대경, 현미경 |
재결정 알갱이는 계절을 탄다. 겨울에 냉각수가 차가워지면 재킷 쪽 벽면이 빠르게 굳어, 스크래퍼가 조금만 덜 긁어도 굳은 층이 생긴다. 이 층이 떨어져 내용물에 섞이면 손에 걸리는 알갱이가 된다. 여름에는 멀쩡하던 제품이 겨울에만 알갱이 클레임이 나온다면 냉각 쪽을 먼저 본다. 나는 겨울철에는 냉각 재킷의 물 온도 하한을 따로 정해, 너무 찬물이 재킷으로 들어가지 않게 했다.
피시아이는 공장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다. 한번 생긴 피시아이는 오래 교반해도 잘 안 풀리고, 억지로 풀려고 호모를 돌리면 앞에서 말한 전단 파괴가 따라온다. 예방이 답이다. 증점제는 체에 쳐서 천천히 흩뿌리듯 넣거나, 글리세린이나 부틸렌글라이콜 같은 다가 알코올에 먼저 분산해서 넣는다. 투입 방법은 작업표준서에 구체적으로 적고, 투입 속도까지 정해 둔다.
31.6 기포와 공기 혼입 — 내용량, 외관, 안정성까지 흔든다
유화 제품에 들어간 공기는 단순히 보기 싫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비중이 낮아져 같은 부피를 채워도 중량이 모자라고, 표면에 구멍이 생기고, 공기와 닿는 면적이 넓어져 산화와 변색이 빨라지고, 입자 사이에 낀 공기가 안정성을 떨어뜨린다.
| 공기가 들어가는 곳 | 원인 | 예방 |
|---|---|---|
| 유화기 안 | 진공 불량(패킹·밸브 누설), 진공 없이 고속 교반, 액면 위에서 호모 회전 | 진공도 기록, 패킹 정기 교체, 액면 높이 확인 후 호모 가동 |
| 원료 투입 시 | 분체·증점제 투입 때 공기가 함께 딸려 들어감 | 진공 흡입 투입, 투입 후 탈포 시간 |
| 이송 중 | 펌프 흡입구로 공기 유입, 호스 연결부 누설, 낙차 큰 투입 | 연결부 점검, 탱크 바닥 쪽 투입, 낙차 줄이기 |
| 저장·숙성 중 | 저장 용기에 떨어뜨리듯 담을 때 공기 혼입 | 벽을 타고 흐르게 담기, 숙성 후 탈포 |
| 충전 중 | 호퍼 교반, 충전 노즐 끝 공기, 고속 충전 | 호퍼 교반 속도 조정, 노즐 위치, 충전 속도 |
기포 불량은 비중으로 가장 쉽게 잡힌다. 같은 내용물의 비중을 정상 로트와 비교하면 공기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대략 알 수 있다. 나는 기포에 민감한 고점도 크림은 내용물 검사 항목에 비중을 넣고, 비중이 기준보다 낮으면 충전 전에 탈포를 다시 하게 했다.
진공 불량은 원인 중에서도 가장 조용히 진행된다. 유화기 뚜껑 패킹이나 밸브가 조금씩 닳아도 진공계 바늘은 크게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진공을 건 뒤 밸브를 닫고 일정 시간 동안 진공도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보는 누설 점검을 정기적으로 하면, 패킹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알 수 있다.
31.7 유화 불량의 원인 조사 — 먼저 볼 것과 그다음 볼 것
원인을 찾는 사고의 순서는 앞 장에서 정리했다. 여기서는 유화 불량에서 그 순서를 실제로 돌릴 때 무엇부터 보는지만 정리한다.
- 현물을 본다. 불량 내용물과 정상 내용물(또는 보관용 검체)을 나란히 놓고 외관, 냄새, 점도, 비중, pH를 잰다. 냄새가 변했거나 가스가 차 있으면 미생물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 현미경을 본다. 같은 배율로 입자 크기와 모양, 응집, 결정, 기포를 비교한다. 유화 불량 조사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주는 단계다.
- 제조 기록의 그래프를 본다. 온도, 호모믹서 회전수, 교반 속도, 진공도를 시간축으로 늘어놓고 정상 배치와 겹쳐 본다. 숫자 한 줄로는 안 보이던 차이가 그래프로는 바로 보인다.
- 원료 로트를 본다. 불량 배치에만 쓰인 원료 로트가 있는지, 제조원이 바뀐 원료가 있는지 확인한다.
- 설비를 본다. 호모믹서 간극, 스크래퍼 블레이드, 진공 패킹, 재킷, 온도계 교정 상태를 확인한다.
- 재현한다. 의심되는 조건을 실험실 규모로 재현해 같은 불량이 나오는지 본다. 다만 실험실 재현은 설비 차이를 재현하지 못하므로, 설비 원인이 의심되면 정비 후 양산 배치로 확인한다.

제조 기록이 그래프로 남는 설비라면 이 조사는 훨씬 쉬워진다. 요즘 유화기는 대부분 온도와 회전수와 진공도를 자동으로 기록하지만, 그 기록을 불량 조사 때 꺼내 보는 공장은 생각보다 적다. 나는 주요 제품마다 잘 만들어진 배치의 그래프를 기준 곡선으로 저장해 두게 했다. 불량이 나면 그 곡선과 겹쳐 보는 것이 조사의 첫 단계가 됐다.
유화 불량에서 원인을 하나로 단정하기 전에 조심할 것이 있다. 유화는 여러 조건이 함께 맞아야 안정해지는 계라서, 하나하나는 허용 범위 안이었던 조건들이 한꺼번에 불리한 쪽으로 겹쳐서 불량이 되는 경우가 많다. 유화 온도가 하한 근처였고, 호모 시간이 하한 근처였고, 원료 로트의 유화제가 조금 약했다. 셋 다 규격 안이었지만 합쳐지니 불량이 됐다. 이런 경우에는 원인 하나를 고치는 것보다 공정 조건의 허용 범위 자체를 좁히는 것이 대책이 된다.
31.8 설비가 원인일 때 — 호모믹서, 진공, 재킷, 스크래퍼
설비 원인은 처방 원인보다 찾기 어렵다. 설비는 조금씩 변하고, 그 변화가 기록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장 첫머리의 호모믹서 간극 마모가 그 예다.
| 설비 부위 | 변화 | 나타나는 불량 | 점검 방법·주기(예시) |
|---|---|---|---|
| 호모믹서 로터·스테이터 | 마모로 간극 증가 | 입자 커짐, 분리, 결 거칠어짐 | 간극 측정, 정기 정비 시(예: 연 1회 이상), 입도 추세 감시 |
| 호모믹서 회전수 | 벨트 미끄러짐, 인버터 표시와 실제 회전수 차이 | 전단 부족 | 회전계로 실측(예: 분기 1회) |
| 진공 계통 | 패킹·밸브·펌프 노후 | 기포, 산화, 분리 | 누설 점검(예: 월 1회), 패킹 교체 주기 |
| 가온·냉각 재킷 | 스케일 축적으로 열전달 저하 | 냉각 지연, 점도 이상, 재결정 | 같은 조건에서 냉각 시간 추세, 정기 세척 |
| 스크래퍼(앵커 교반기) | 블레이드 마모, 벽면과 간격 증가 | 벽면 굳은 층, 알갱이, 열전달 저하 | 블레이드 상태 육안, 마모 시 교체 |
| 온도계 | 센서 오차 | 실제 온도와 기록 온도 차이 | 표준 온도계로 교정(예: 연 1~2회) |
| 이송 펌프 | 전단 과다, 흡입부 누설 | 점도 저하, 기포 | 이송 전후 점도·비중 비교 |
설비 변화를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추세를 보는 것이다. 같은 제품의 입자 크기, 냉각에 걸리는 시간, 점도를 배치마다 기록해 그래프로 보면, 설비가 서서히 변할 때 숫자도 서서히 움직인다. 규격 안에서 움직이는 동안 알아차리면 불량이 되기 전에 정비할 수 있다. 장 첫머리의 사례도, 돌아보면 클레임이 들어오기 몇 달 전부터 그 크림의 입자 크기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다만 아무도 그 숫자를 추세로 보지 않았을 뿐이다.
설비 원인이 의심될 때 하나 더 확인할 것이 있다. 같은 제품을 다른 유화기에서 만들었을 때도 불량이 나는지다. 다른 유화기에서는 정상이라면 설비 쪽으로, 어느 유화기에서든 불량이라면 원료나 처방이나 공정 조건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여러 대의 유화기를 가진 공장이라면 이 비교가 가장 빠른 판별법이다.
31.9 원료가 원인일 때 — 로트, 제조원, 보관
처방도 공정도 설비도 그대로인데 불량이 생겼다면 원료를 본다. 원료는 같은 이름, 같은 규격이라도 로트마다, 제조원마다 조금씩 다르다.
| 원료 | 달라질 수 있는 것 | 유화에 미치는 영향 | 공장에서 확인할 것 |
|---|---|---|---|
| 유화제 | 조성 분포, 수분, 불순물 | 유화력 차이, 입자 크기 차이 | 시험성적서 항목 비교, 문제 시 이전 로트와 비교 유화 |
| 왁스·고급 알코올 | 융점, 사슬 길이 분포 | 점도, 결, 재결정 | 융점 확인, 로트 변경 시 점도 추세 |
| 증점제 | 분자량, 수분 흡습 | 점도 차이, 분산성 | 개봉 후 보관 상태, 점도 추세 |
| 오일 | 점도, 극성, 산화 정도 | 유화 안정성, 냄새 | 산가·과산화물가(가능 시), 보관 기간 |
| 식물 추출물·전해질 원료 | 염 농도, pH, 고형분 | 유화 막 약화, 점도 저하 | 전도도·pH, 로트별 차이 |
| 정제수 | 이온 농도, 미생물 | 전해질 민감 유화 불안정, 미생물 분리 | 전도도 기록, 미생물 모니터링 |
원료 로트 문제는 시험성적서만으로는 잘 안 잡힌다. 성적서 항목은 규격 적합 여부를 보는 것이지, 우리 처방에서 유화가 잘 되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화에 민감한 핵심 원료는 새 로트가 들어오면 소규모로 유화해 보고 이전 로트와 점도와 입자를 비교하는 공장도 있다. 모든 원료에 할 수는 없지만, 문제가 반복된 원료라면 해 볼 가치가 있다.
원료의 보관 상태도 원인이 된다. 개봉한 증점제가 습기를 먹으면 분산성이 떨어지고, 개봉 후 오래된 오일은 산화돼 냄새가 바뀌고 유화 안정성에도 영향을 준다. 개봉일을 원료 용기에 적고, 개봉 후 사용 기한을 정해 두는 것이 기본이다.
원료가 원인으로 확인되면 대책은 두 방향이다. 하나는 공급사와 함께 그 로트의 차이를 확인하고 규격을 보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처방과 공정이 원료의 정상적인 변동 범위를 견딜 만큼 여유가 있는지 다시 보는 것이다. 원료는 늘 조금씩 변한다. 원료가 조금만 변해도 불량이 나는 처방이라면, 원료를 탓하기 전에 처방의 여유를 다시 봐야 한다. 이 판단은 공장 혼자 할 수 없으니 연구팀과 함께 한다.
31.10 현장 트러블슈팅과 주의점
유화 불량을 증상별로 모아 정리했다.
| 현상 | 흔한 원인 | 확인 방법 | 예방·조치 |
|---|---|---|---|
| 유화 직후 분리 | 유화제 미용해, 투입 순서·온도 오류, 칭량 누락 | 칭량·투입 기록, 유상 용해 상태 | 용해 확인 단계, 칭량 이중 확인 |
| 안정성 중 기름 띠 | 입자 큼(호모 부족·간극 마모), 처방 여유 부족 | 현미경 입도, 간극 측정 | 호모 정비 주기, 입도 추세 감시 |
| 겨울에만 알갱이 | 냉각수 과냉, 벽면 굳은 층, 스크래퍼 마모 | 재킷 물 온도, 벽면 상태 | 냉각수 온도 하한, 블레이드 교체 |
| 피시아이 | 증점제 일시 투입 | 덩어리 속 상태 | 체 투입, 다가 알코올 선분산 |
| 점도 낮음(증점제 제품) | 전단 파괴, 투입 온도 높음, 중화 pH | 투입 후 호모 시간, 온도, pH | 고속 교반 허용 시간 명시, 온도 기준 투입 |
| 점도 배치 편차 | 계절 냉각 차이, 작업자 차이, 측정 조건 | 추세·층별 분석, 측정 조건 | 온도 기준 공정, 측정 조건 통일 |
| 충전 중량 미달·표면 구멍 | 기포 혼입, 진공 누설 | 비중, 누설 점검 | 탈포 기준, 패킹 교체 |
| 이송 후 점도 저하 | 펌프 전단 | 이송 전후 점도 | 펌프 방식·속도 변경 |
| 시장 분리, 보관용 검체 정상 | 유통 중 고온·동결 | 유통 경로, 계절 | 운송 조건 안내, 동결 해동 시험 |
| 분리와 함께 냄새 변화·가스 | 미생물 오염 | 미생물 시험 | 미생물 조사로 전환 |
| 다른 유화기에서는 정상 | 특정 설비 문제 | 설비별 비교 | 해당 설비 점검·정비 |
| 원료 로트 바뀐 뒤 불량 | 원료 변동, 처방 여유 부족 | 로트별 비교 유화 | 공급사 협의, 처방 여유 검토 |
표에 다 담지 못한 경험 몇 가지를 덧붙인다.
첫째, 처방을 먼저 의심하지 않는다. 오래 문제없던 제품에서 유화 불량이 나오면 처방은 그대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뀐 것은 설비, 원료, 계절, 사람이다. 처방 보강은 원인을 찾은 뒤, 공장 쪽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을 때 이야기한다. 장 첫머리의 영양 크림도 처방을 바꿨다면 유화제는 늘어났지만 호모믹서는 계속 닳아 갔을 것이다.
둘째, 현미경을 공장 가까이에 둔다. 유화 불량 조사에서 현미경만큼 많은 것을 알려 주는 도구는 없다. 그런데 현미경이 품질실 깊숙이 있으면 생산 쪽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나는 생산 현장 가까이 간단한 현미경을 두고, 주요 제품은 유화 직후와 숙성 후에 한 번씩 보게 했다. 매 배치 사진 한 장씩만 남겨도 입자 크기의 추세를 알 수 있다.
셋째, 작업자의 만회 행동을 기록하게 한다. 유화가 이상해 보이면 작업자는 호모를 더 돌리거나, 온도를 더 올리거나, 교반을 세게 해서 만회하려 한다. 그 행동 자체가 새로운 불량을 만들기도 하고, 기록에 남지 않으면 조사를 헷갈리게 한다. 이상을 느꼈을 때 임의로 조정하지 말고 먼저 보고하고, 조정했다면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 기록에 남기게 했다. 그 기록은 작업자를 탓하는 데 쓰지 않고, 조사의 단서로만 쓴다.
넷째, 되살린 내용물은 더 오래 지켜본다. 분리 조짐이 있는 내용물을 재가온·재유화로 되살릴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내용물은 처음부터 잘 만든 내용물보다 안정성 여유가 적다. 되살리기 여부는 품질책임자가 판단하고, 되살린 배치는 따로 표시해 안정성을 더 오래, 더 자주 확인한다.
다섯째, 유화 불량은 대부분 규격 안에서 먼저 움직인다. 입자 크기, 점도, 냉각 시간, 진공도는 불량이 되기 전에 조금씩 움직인다. 이 숫자들을 배치마다 기록하고 추세로 보는 공장은 유화 불량을 클레임이 아니라 그래프에서 먼저 만난다.
31.11 정리하며
유화 불량은 겉으로는 분리, 점도 이상, 거친 결, 기포로 나타나지만, 원인은 처방보다 공장 쪽에 있는 경우가 많다. 입자를 충분히 작게 만들지 못했거나, 입자를 감싸는 막을 약하게 만들었거나, 만든 뒤에 막을 깨는 조건을 만났거나. 그리고 그 뒤에는 대개 설비의 변화, 원료의 변동, 계절의 변화, 공정 조건의 빈틈이 있다.
이 장의 핵심을 줄이면 이렇다. 불량이 처음 보인 시점으로 원인 후보를 좁히고, 현물과 현미경으로 무엇이 무너졌는지를 확인한다. 제조 기록을 그래프로 정상 배치와 겹쳐 보고, 원료 로트와 설비 상태를 차례로 확인한다. 오래 문제없던 제품이라면 처방보다 바뀐 것을 먼저 찾는다. 호모믹서 간극, 진공 패킹, 재킷, 스크래퍼, 온도계처럼 조용히 변하는 설비는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입자 크기와 점도와 냉각 시간은 추세로 본다.
유화는 여러 조건이 함께 맞아야 안정해지는 계다. 그래서 유화 불량을 줄이는 공장은 큰 실수를 막는 공장이 아니라, 작은 변화를 일찍 알아차리는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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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기관: 식품의약품안전처

